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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POSTS

  1. 2009/03/20 평범한 이야기 (2)
  2. 2009/03/04 커피 (4)
  3. 2008/09/21 나는 인어공주가 되어버렸다. (12)
  4. 2008/06/18 시험 기간의 비애 (2)
  5. 2008/05/29 노트 (8)
  6. 2007/10/09 누군가의 가을 (10)
  7. 2007/09/19 그 자리에 무언가 있었다. (4)
  8. 2006/10/25 솔로몬의 지혜: 현대적 관점의 재해석 (2)
학교에서 하숙집으로 가는 길에는 편의점이 하나 있다. 어느 덧 3년 째에 접어드는 하숙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자연스레 그 편의점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낮에는 학교에 있기 때문에 항상 편의점을 찾는 시간은 늦은 저녁이나 밤, 새벽이 되기 마련인데 그 시간대에는 항상 같은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나보다 두 살 정도 많아보이는 형이다. 처음에 어떻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지는 가물가물한데, 아마 그 형이 먼저 말을 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릴 적부터 인사는 꼬박꼬박 하는 습관이 들었던 터라 인사야 자주 나눴었지만, 그 날은 내가 계산대 위에 간식거리를 올려놓자 무언가 말을 걸었다. 늦은 시간에 자주 오시네요, 였던 것 같다. 연대 학생이세요, 라고 물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한 마디씩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이웃, 그래 이웃이 되었던 것 같다.

아직 한 달은 안되었을거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언가 살 것이 있어서 편의점을 찾았는데, 계산대에 과자봉지를 올려놓던 나에게 말했다.
"제가 이야기 했었나요? 여기 곧 문 닫아요. 사장님이 점포를 정리하실건가봐요. 다른 분이 다시 여기서 편의점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아마 며칠 뒤면 그만 둘 것 같아요. 자주 오세요."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익숙해진 얼굴, 밝은 목소리, 겨우 이것 뿐.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이름이 뭐냐고, 어디 사시느냐고, 아무것도. 그저 네.. 자주 올께요. 아쉬운 마음에 그 곳에 잠깐 더 서있었던 것 뿐.

그러고보니 이 형이 오기 전에 일했던 또다른 아르바이트생 형도 있었다. 말투나 행동으로 보아 좀 더 거친 삶을 살았을 것 같은 이미지였다. 그 형과도 역시 그렇게 친해졌다. 아니, 익숙해졌다. 아니, 친해졌다. 모르겠다. 단지 자주 마주쳤기 때문일까,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으면서도 왠지 모를 친밀감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형과도 역시 그렇게 헤어졌다. 어느 날 나에게 그러는거다. 곧 아르바이트를 그만둔다고. "혹시 담배 피세요?", 하고 묻는데 그날 따라 왜그렇게 담배를 안피는게 미안하던지. 편의점 문 앞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 어디 사니, 나이가 몇 이니, 학생이니 하는 이야기 몇 마디를 나누고는 헤어졌다.

그렇게 익숙해지고, 헤어지고, 그리고 잊혀진다.



편의점 바로 옆에 치킨집이 있다. 같이 치킨에 맥주 한 잔 하면서 그냥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봤으면 참 재밌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2009/03/20 04:58 2009/03/20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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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부쩍 커피를 많이 마신다. 생각해보니 하루에 세네잔은 꼬박꼬박 마시는 듯 하다. 원두커피는 몸에 좋다는데 나는 맥심 모카골드, 커피믹스만 마신다. 고등학교 때 까지는 머리 나빠진다는 말에 괜히 꺼림찍해서 거의 마시지 않았고, 대학교에 와서도 된장질 하겠답시고 카페를 가거나 할 때가 아니면 역시 입에 대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에 갈 때 내 책상 위 여기저기에 놓여있는 빈 종이컵들을 보며 깜짝 놀랄 정도다.

다름이 아니라 연구실에 항상 비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시면 잠이 안온다는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는 의도가 살짝 의심스럽긴 하나, 커피 1.5L 를 마셔도 이내 잠이들어버리는 나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오히려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종일을 있다 보면 중간중간에 일어나서 기지개도 펴줘야 하고 밖에 나가서 바람도 한번 쐬어줘야 하는데, 그럴 때 이 커피만큼 좋은 친구가 없다.
 
하지만 난 여전히 커피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못된다. 커피의 맛을 구분할 줄 아는 입도 없다. 자주 마시지만 즐기는 편도 못된다. 모순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단지 마실 것이 커피 밖에 없으니 마시는 정도인 것이다. 녹차나 홍차가 있었다면, 매실 음료가 있었다면, 결명자 차가 있었다면 나는 그걸 커피 만큼 자주 마셨을거다. 내가 좋아하는 콜라가 있었다면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하루 1.5L로는 택도 없이 모자랐겠지.

결국 그런거다. 내가 커피를 이렇게도 자주 마시게 된 건 결국 환경 때문인거다. 마침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하고, 자연스레 입은 심심해지며, 마침 커피는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그런 상황 말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거다.

커피를 끊어볼까.
지금의 관성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2009/03/04 01:28 2009/03/04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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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어공주가 되어버렸다. 무슨 말인고 하니, 마치 동화 속 인어공주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평상시에 말하는 톤은 그나마 유지(?)할만 한데, 이게 노래방만 가면 문제다. 당최 '도레미파솔라시도'가 불러지지 않는다. 한 옥타브의 음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애국가도 못부르고 아리랑도 못부른다. 당연히 요즘 유행한다는 노래들, 내가 좋아 하는 노래들을 부르기엔 택도 없이 모자라다. '몸이 피곤해서 그런가', 라고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던 나이기에 그저 당혹스럽다.

이런 느낌이다. 무협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수십년동안 수련을 해온 주인공이 무리하게 무공을 익히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무공을 잃는... 물론 내가 노래 잘 불러보려고 수십년 연습을 했던 것도 아니고, 무리하게 연습을 했던 적도 없지만 말이다.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컴퓨터에서 한동준의 '너를 사랑해'가 흘러나온다.
중학교 때, 첫사랑이란 걸 할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낮간지럽지만, 여자 친구에게 이 노래를 불러주고 싶어 참으로 열심히도 연습을 했었다. 하지만 변성기 한가운데 있던 내 목소리는 결국 그 곡을 허락하지 않았었다. 그 애와 헤어지고도 한참 후인 고등학교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편하게 부를 수 있게 되었으니.

하지만 지금 내 목은 다시 중학교 때, 변성기로 돌아간 것 같다. 열심히 연습했던 덕분인지, 그동안 그렇게도 편하게 잘 불리던 '너를 사랑해'였는데, 이제 또다시 아무리 애를 써도 불러지지 않는다.



맙소사. 내 몸이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2008/09/21 03:47 2008/09/21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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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기간이다.

이 때만 되면 참 난감한 것이,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프다는 점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배가 고프다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별로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배고파"를 중얼거리고 다니기 때문이다. 말에는 최면 효과가 있어서, 몇 번 그런 말을 되뇌이다보면 나는 정말 무언가 먹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 같은 것에 빠져버린다. 그런 어이없이 조작된 본능을 핑계로 결국 무언가를 먹고야 만다.

이제부터는 더 큰일이다. 배가 불러진 것이다. 스스로에게 배고프다는 최면을 걸어서는 기어코 무언가를 먹고 만 과오로, 이제는 부른 배를 어찌 할 줄 모르고 방황하기 시작한다. 바람이나 쐬러 도서관 밖으로 걸어나오면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던 오리온 자리의 삼태성이 반짝거리고 있고, 아무도 없는 노천극장에 가면 시라도 한 수 읊을 수 있을 것 같은 감상에 젖어든다.

여전히 손도 안댄 시험 공부가 걱정이 되어 자리로 돌아오면, 이제는 졸음이 찾아온다. 부른 배와 푹신한 의자는 도서관의 조용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비로소 숙면을 위한 최고의 환경을 완성한다.

얼마나 잤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단지, 또다시 배가 고플 뿐이다.





2008/06/18 21:37 2008/06/18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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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던 어느 날 저녁, 노트를 한 권 샀다.
고를 때는 단지 그 색이 마음에 들어 집었는데 - 이 노트의 색은 글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를테면 고급스러운 크림슨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인자해진 듯한 느낌이다. - 오늘 첫 페이지에 글을 쓰면서 또 하나 참 마음에 드는 점을 발견했다.
이 노트는 북북 잘도 찢어진다.

처음이란 어딘가 어설프기 마련이고, 시작이란 무언가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결국,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 되고 말았다. 글이랄 것도 없다. 한 문장을 적었을 뿐인데 갑자기 머릿 속이 하얘지고 도무지 어떻게 글을 이어나가야 할 지 막막해져 버렸다.
'어떡하지.'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찢자.'

북-
어라, 생각보다 깔끔하게 잘 찢어진다.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날카롭게 찢겨 나가는건 아니지만, 오히려 아픔을 간직한 듯 약간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애틋하기까지 하다.

이 노트에 채워질 많은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담겨질 내 스물 셋의 흔적들.
언젠가 그 흔적들도 애틋한 추억이 되겠지?
흔적이란 그런거니까.

2008/05/29 04:59 2008/05/29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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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남쪽으로 태풍이 지나갔다더니, 오늘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습관처럼 말하고 다녔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떠올리는 가을의 이미지와 내가 좋아하는 가을의 이미지는 약간 다른 듯 하다.

하늘이 높고 푸르른데다 햇살이 그리 강하지도 않고 바람까지 선선해서 놀러 다니기 최고의 날씨. 산은 단풍으로 물들고, 길 한켠에 코스모스가 피는 계절. 무언가 넉넉하고 자유로운 느낌의 계절이 바로 흔히들 떠올리는 가을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을은 위에서 말한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한낮에도 반팔을 입고 다니기에는 살짝 추운 정도의 쌀쌀함. 시원함 보다는 따스함이 반갑고, 덥다며 내팽개쳤던 이불에게 미안해지는 계절. 살갗에 닿는 차가운 바람이 서글픈.. 그래서 잊고 있었던 내 주위의 따스함이 더욱 고마워지고, 날 따뜻하게 감싸줄 누군가의 체온이 간절히 그리워지는 시간.


 
오늘 느즈막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노숙자 한 분이 벤치에 누워계셨다. 긴팔 옷을 입고도 쌀쌀함이 느껴져 걸음을 재촉하고 있던 나였다.
'추우실텐데...'

가을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그 가을이 너무나 시릴 것 같아 슬프다.





2007/10/09 04:01 2007/10/09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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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e LAST.... Tracked from BLIND☆BLUE 2007/10/12 23:46 Delete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역으로 향하는 출근길에 옷자락을 여미며, 스산한 가을바람(사실은 메트로-_-)이 뿌려 준- 반갑지 않은 상념에 젖었다. 작년의 이맘 때, 혹은 재작년의 이맘 때. 나는 ..

늦은 밤이었다. 하숙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개를 숙였다. 내 오른발이 땅에 닿으려던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 무언가 있었다.
'못?'
가까스로 오른발을 움직였다.
그 무언가를 겨우 피해 발을 땅에 디디는 순간.

약간, 아주 약간이었지만 확실히,
그 무언가가 움직였다.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2007/09/19 21:21 2007/09/19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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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우기는 두 여인이 있었다. 솔로몬 왕은 아기를 반으로 잘라서 나눠 가지라고 한다. 그러자 한 여인은 울며불며 차라리 아기를 저 여자에게 주라고 하고, 또 다른 여인은 잘됐다며 어서 반으로 나누자고 한다. 자, 이제 아기의 진짜 어머니는 가려졌다. 바로 ‘솔로몬의 지혜’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법정에서 재판관이 ‘아기를 반으로 나눠 가져라’ 라는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흔히 솔로몬의 지혜를 단순히 현실성 없는 옛날이야기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뭔가 꺼림칙하다. ‘지혜’라는 것은 지식과는 달리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한 현명함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현대에도 분명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각각의 여인은 어떤 가치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라는 생각은 잠시 놓아두자.

두 명의 여인이 있다. 한 여인은 아기를 반반씩 나누어 가지라는 판결에, 차라리 아기를 다른 여인에게 주라고 한다. 그녀에게 ‘내 아기’보다 중요한 것은 ‘아기의 생명’이다. 아기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다른 한 여인은 내 몫과 네 몫을 분명하게 구분 짓기를 원한다. 아기를 반으로 잘라서라도 말이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합리적이고 공평한 ‘내 몫’이다. 그런데 솔로몬은 여기서 첫 번째 여인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나는 바로 이 점을 주목하고 싶다. ‘사랑’을 대표하는 여인과 ‘합리성’을 대표하는 여인 중에서, 솔로몬은 ‘사랑’을 선택하였고, 그의 선택이 바로 옳은 선택으로 드러났다는 점.

결국 이 이야기는 무언가를 판단함에 있어서 그 기본은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 사랑에 기초한 판단이, 즉 가장 인간적인 가치를 품는 판단이 곧 가장 옳은 판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솔로몬의 지혜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교훈일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난해한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리는 너무 아기를 반으로 나누는 여인을 신봉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매사에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것만 찾는데 익숙해져 있는 이 시대야 말로, 솔로몬의 지혜를 다시 한 번 되 돌이켜 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작년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과제로 적었던 글.
정돈된, 다듬어진 글 이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만큼 많이 고민했고, 많이 노력했던 글이다.
결코 쉽지 않았지만, 글을 쓰면서 즐거웠다. 행복하기까지 했다.

2006/10/25 17:14 2006/10/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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