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처음에 적으려 했던 글은 요즘의 블로그와 블로고스피어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려다 보니 도입부에서 어쩔 수 없이 소셜 네트워크의 다른 서비스들에 대해 언급을 해야만했고, 줄인다고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하려던 이야기보다도 이 도입부가 더 길어져버렸다. 그래서 글이 이렇게 나뉘었다. 이 글이 바로 그 도입부, 소셜네트워킹서비스의 흐름, 혹은 소셜네트워킹서비스의 역사라고 보면 되겠다. 뒤에 이어질 글은 언제 다시 적게될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 부분을 더 의욕적으로 적었는데, 적다보니 점점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 되어갔고, 결국 그 글은 버려지고 서론 격인 이 글만이 남게 되었다.


사람들이 컴퓨터 네트워크를 이용해 커뮤니케이션 했던 방식의 흐름, 즉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의 흐름을 세대를 나누어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제 1세대는 E-mail이다. E-mail은 인터넷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 유래깊은 서비스이자 애플리케이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메일(현 다음 커뮤니케이션) 등의 서비스가 1990년대 중반부터 무료 메일계정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일반 사용자들에게 대중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2세대는 개인 홈페이지를 꼽아야 할 것이다. 물론 개인 홈페이지는 월드와이드웹(WWW)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만, 개인 사용자들이 홈페이지 작성/개설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우리 나라 역시 개인 홈페이지 제작을 위한 무료 계정 서비스가 시작된 것도, 수많은 웹디자인 경진대회가 있었던 것도, 학생들의 장래희망에 '웹디자이너' 혹은 '웹마스터'라는 직업이 등장한 것도 모두 이 때 부터이다. 3세대는 바로 이 다음 글에서 이야기할 블로그이다. Web과 Log의 합성어인 블로그는 일반 사용자들이 홈페이지 제작이라는 전문적인 기술이 없이도 마음껏 웹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다양한 종류의 소식을 알리는 활동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4세대는 싸이월드를 꼽아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전문적인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가 등장한 셈이다. 최근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역시 이러한 소셜네트워킹서비스로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세대별 분류는 몇 가지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데, 첫번째는 바로 3세대의 블로그와 4세대에 위치한 싸이월드, 트위터/페이스북 때문이다. 사실 싸이월드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이른 시기에 시작했던 성공적인 소셜네트워킹서비스이다. 단, 세계화되지 못하고 한국이라는 우물 안에서 성공했다는 한계를 가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블로그가 어느정도 활성화 되고 난 이후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필두로한 SNS인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블로그 붐이 일어나기도 이전에 아이러브스쿨, 프리챌 등의 서비스를 거쳐 싸이월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대중 앞에 나타났다. 이때문에 전세계적인 기준에 맞추어 설명하려면 위의 분류가 합당하겠지만, 우리나라 사용자들에겐 3세대 싸이월드, 4세대 블로그, 그리고 다시 5세대의 트위터/페이스북 등으로 조절하는 것이 더욱 익숙할 수 있다. 단, 이렇게 나눌 경우 3세대 싸이월드와 5세대 트위터/페이스북 간의 명확한 특징을 구분지을 수 없고, 전세계적인 흐름과도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이 나누었다. (물론 이에 앞서 아이러브스쿨이나 프리챌과 같은 싸이월드의 시초가 된 서비스에 대한 언급도 있어야 할 것이고, 이렇게 이른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성공했던 싸이월드가 왜 세계화에는 실패했는가에 대한 이슈도 존재하지만 이는 일단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고 넘어가겠다.)


다른 논란으로는 ICQ, MSN Messenger, NateOn 등 메신저 서비스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혹은 네이버나 다음, 야후, 혹은 라이코스나 알타비스타와 같은 검색엔진/포털 사이트들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그 외에도 유튜브 등의 소셜미디어나 그루폰과 같은 소셜커머스, 혹은 옛날의 세이클럽 등과 같은 채팅 서비스 등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 논란의 여지가 될 수는 있겠으나 이들은 그 목적이나 서비스의 전반적인 발전흐름이 소셜네트워킹서비스의 흐름에 핵심적인 요소로 다루기는 다소 애매한 점이 있기에 여기서는 제외하였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위의 요소들은 모두 1세대~4세대로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그 중심축은 이동했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서비스들과는 차별되는 특징과 목적을 가지고 가지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현재에도 이 모든 서비스는 동시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기술의 경우 기존의 것보다 더 나은 기술이 나오면 기존의 기술은 도태되기 마련인데, 소셜네트워크의 큰 흐름에 존재하는 이메일, 개인홈페이지, 그리고 블로그는 최근의 트위터/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킹서비스의 큰 돌풍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스스로의 영역을 지키고 있으며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단 하나, 블로그만 빼고 말이다.




2011/11/20 23:56 2011/11/20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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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한 캔 마셨다.



느즈막히 집에와서 아이폰을 스피커에 연결하며, CD플레이어를 하나 살까, 생각을 했다.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튕기면 음악이 처음부터 나오던 그 CD플레이어.

고등학교 때는 그 CD플레이어가 삶의 낙이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담아 정성스레 레코딩해서는, 야자 시간이며 학교 오갈때며 시도 때도 없이 들었다.

마음에 드는 CD를 정성스레 CD플레이어에 넣고 리모콘을 살짝 돌리면, 그게 내 야자 시간의 시작을 의미했고, 하루 일과 끝을 의미했고, 내 고등학교 시절을 의미했다.

 

고독하군.

 

차가운 아이폰에서 처음 듣는 음악이 흘러 나온다. 아, 아니다.

날 닮아가는 너의 모습은 언제나 날 향기롭게 해. 내겐 눈물나게 아름다운 너 하나만으로도, 너무 감사해 난 행복해. 널 나에게 준 이 세상 끝까지 너를 사랑해, 영원히 변하지 않을 지금 이대로..

 

스팸을 구워서 한 캔 더 마시고 자야겠다. 스팸은 맛있다.

 

 

 
2011/07/15 00:03 2011/07/1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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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다.
때로는 기록해 둘 만큼 강렬하지 않았고,
때로는 그저 귀찮음에 다음으로 미루었던,
그래서 시간이 흐른 후, 그 때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에 아쉬워 하면서도
이제와서 그 때를 기억하기에는 이미 너무 옅어져버린,
그렇게 남겨진,
그리고 차차 희미해져,
마침내 사라질,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
2011/06/09 00:11 2011/06/0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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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생들은 만화책이 아닌 웹툰이라는 것을 즐겨 본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에서 아마추어 작가의 만화를 매주 연재 형식으로 서비스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제는 강풀과 같은 웹툰으로 인해 유명해진 만화가도 나왔고, 거의 모든 장르를 다루고 있으며, 그 규모 역시 간단한 네컷 만화에서부터 몇 년간 연재를 하는 장편 만화까지 넓어졌다. 굳이 만화책을 사거나 대여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잠깐 쉬는 시간에 쉽게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미 대학생들에게는 하나의 '문화'가 되어버렸다고 봐도 될 정도로 성장했다.

나 역시 제법 다양한 웹툰을 보아왔는데, 그 중에서도 오늘 이야기할 웹툰은 네이버에서 지금도 연재 중인 '호랭총각'이라는 웹툰(주소: http://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22897&weekday=sun)이다. 조선시대, 말을 할줄 아는 사람이 되고싶은 호랑이가 주인공인데, 이렇게 글로 주절주절 소개하는 것보다는 직접 만화를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아래는 주인공 호랭총각이 어릴 적 아기 호랑이 일 때 그를 키워준 할아버지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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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씨는 곱게쓰고, 매사 행동거지는 조심히 하는 것을 잊지 말거라.
너의 말과 행동은 남이 너를 대하는 본이 되기 때문이란다.
가지기에 연연치 말고 베품에 아낌이 없어야 하느니라.
그 덕이 쌓여, 더 큰것을 함께 나눌 수 있기 때문이란다.
기쁨은 더할줄 알고, 슬픔은 나눌줄 알아야 하느니라.
마을을 함께 나눌줄 안다면 사람 아닌 천지 만물 그 무엇과도 이웃이며 벗이 될 수 있으니,
네가 항시 마음을 다하여 깍듯하다면, 그 누구라도 너를 짐승이 아닌 사람의 예로 대할 것이니라.

상당히 인상적이다. 우리 주위에서 정말 듣기 힘든 말이다. 하지만 소중한 말, 마치 아버지가 자식에게 해줄 것만 같은 그런 말이다. 이 웹툰의 다양한 스토리 중, '선비의 혼' 파트는 특히나 이러한 이야기가 많다. 난 정말이지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말을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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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외침에도, 끝모를 부정부패에도 이 나라가 망하지 않고 명맥을 이어나가는 이유가 뭔줄 아느냐?
그것은 몇몇의 부정한자들 보다 묵묵히 제 살길 바르게 사는 이들이 그들 보다 숱하게 많기 때문이니라.
그런 소리없는 자들이 곧 대의고 정의니라.

호랭총각은 이선균이라는 선비의 도움을 받아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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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는 반듯하게 펴고, 어깨에는 힘을 빼고, 붓을 잡는 손은 야무지게.
서두름이 없으되, 망설임 또한 없이.

이 웹툰 자체가 사회 문제에 대한 페러디도 많은 편이지만, 이 '선비의 혼' 파트에는 그러한 부분들이 매우 많다. 주인공 호랭총각이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과거시험을 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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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험 붙으러 공부하지 학문은 무슨 개뿔...
학문이 밥먹여 준답디까? 합격이 밥먹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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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죽을 애를 쓰다 끝내 지쳐 쓰러질라 치면 그때서야 살짝 길이 보이고 그러는 것이 사는 재미 아니겠수? 공선생님도 앓이를 하는 것일테니 곧 좋은 일이 분명 있을 게유. 내 장담 하지요.



호랭총각의 글공부를 도와주고, 과거까지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상균'이라는 선비는 이런저런 사연이 많다. 영의정을 지낸 할아버지와 좌의정을 지낸 작은할아버지, 그리고 그 스스로도 어릴적부터 성균관에 들어가며 천재 소리를 듣던 수재. 하지만 역모를 꾀했다는 모함으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할아버지는 귀양을 가서 병을 얻어 돌아가신다. 지금은 다행히 그 모함의 진실이 밝혀져 집안은 회복이 된 상황이다. 그 이상균이 어릴적 스승을 찾아가면서 밝혀지는 그의 사연, 그리고 결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멘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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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놈! 잘났다 잘났다 하니, 천하에 시건방진놈이 다 되었구나!
몸소 부딪혀 보지도 않고 입으로만 떠들며 고상한채 하는 것이 그것이 선비더냐?

맞춰 살아갈 수 없다 못마땅하다 하면 직접 나서 잘못된 것들은 하나하나 고쳐나가면 될일이 아니더냐.
네 할애비가 네놈 이런꼴 못 본게 천만 다행이다 이눔아!
어사화를 머리에 꽂지 않고서는 내눈앞에 다시 나타날 생각 말거라.
썩 물러가거라!



결국 소과를 합격하고 대과에 도전한 호랭총각. 그리고 임금님이 직접 주관한 과거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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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선비의 혼' 에피소드의 엔딩.
그 표현 방법이 직접적이라 할 수는 있겠으나, 이 뻔한 의미들은... 분명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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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6 08:11 2011/03/2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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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리 나라 사회에서 '남성적인'이라는 형용사는 그다지 긍정적인 뉘앙스를 지니지 못하는 듯 하다. 대표적인 예로, '남성적인 기업문화'를 들 수 있는데, 이는 흔히 수직적이고 획일적이며 강압적인 문화를 나타내고자 할 때 사용된다. 그 남성적이라는 것이 원래 남자라는 존재가 가진 특성인지, 아니면 군대로부터 체득된 우리 나라 특유의 문화인지, 아니면 또다른 요인으로 인해 발현되는 것인지를 떠나 남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부정적인 뉘앙스는 그다지 달갑지 않다. 그에반해 '여성적인'이라는 형용사는 여러모로 매력적인 단어다. 수평적이고, 부드러우며, 다양하고, 관계지향적이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편하고, 따뜻하게까지 느껴진다. 문제가 생겨도 그것을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하고 하는 것을 두고 '여성적'이라 한다.  

하지만 실제로 남성이 그러해서, 여성이 그러해서 이러한 단어가 사용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적인'이라는 단어에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긴 하나, 그렇다고 하여 과연 남성의 문화란 것이 그러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나는 여성의 문화가 수평적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으며, 부드럽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 남성적인 문화라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군대의 문화인 셈이다. 그리고 군대에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문화가 있는 것은 그 목적에 부합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부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어서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문화는 매우 효율적이라는 것을 역사는 증명한다. 이는 기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세계 일류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수직적이고 획일적이며 강압적인, 바로 그 부정적인 뉘앙스의 문화 덕분이었다. 훌륭한 의사결정이 뒷받침된 수직적, 강압적 문화는 분명 매우 효율적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반드시 군대를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군대의 문화가 곧 남성의 문화라 하는 것이라면 이는 그야말로 슬픈 일이다. 모든 남성은 군대에 가기 이전에 어떤 성향이었나에 상관없이 군대를 다녀오게 되면 그러한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문화에 익숙해지게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곧, 모든 남성은 군대 문화에 종속된다는 말이 된다.

핀트가 조금 엇나간 것 같지 않은가. 아무리 남자가 많은 집단이라도 수평적이고, 관계지향적일 수 있다. '그럴수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가 아니다. '효율'이라는 요소가 크리티컬하지 않은 모든 집단, 예를 들어 친목 모임이나 동아리 등에 있어서 남여성비와 그 집단의 문화는 완전히 독립적이다. 어떤 집단에 남자만, 혹은 여자만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집단의 문화란 그 성별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말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리더의 판단에 따라, 혹은 미리 결정된 무언가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집단이라면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문화가 나타난다. 위에서 예로 든 군대나 기업 이외에도 간호사, 국가대표 축구팀, 치어리더, 119 구급출동요원, 스튜어디스 등이 그럴 것이다. 남자가 많아서, 혹은 여자만 있어서 그러한 문화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문화가 가장 효율적이기에 그 문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수직적,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문화는 집단 전체의 퍼포먼스를 최대화할 수 있도록 개개인의 활동이 제약되는 모든 상황에 있어서 발현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단지 상대적으로 여성은 그러한 경험을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게 된 이후에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며, 대한민국 남자는 특이하게 군대라는 곳에서 여자보다 먼저 경험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성별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를 두고 '남성적인 문화는 그러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지 않겠는가.









2011/03/18 05:45 2011/03/18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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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으로 가는 길에는 '양촌리 순대국밥'이라는 음식점이 하나 있다. 제법 넓은데 사람은 별로 없는 집이다. 순대국밥 치고는 그렇게 맛있지가 않은데, 나는 살코기 순대국밥이라는 메뉴가 돼지국밥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종종 가는 집이다. 서울에서는 돼지국밥집을 찾기가 힘들다.

저녁 무렵이었다. 하루종일 일도 잘 안되고 해서, 바람이라도 쐴 겸 두고온 것도 가지러 갈 겸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그 순대국밥집에 사람이 바글바글 한 것이다. 그 넓은 곳에 앉을 자리가 없어보였다.

오늘은 설날이다. 그 춥던 날씨도 언제그랬냐는 듯이 갑자기 풀리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따뜻하기까지 했다. 가족과 친척과 함께하기 좋은 날이다. 함께해야 하는 날이다. 저들도 집에가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싶었을텐데, 가족들도 저들을 기다릴텐데.

발걸음을 옮겼다. 날씨는 무심하게도 따뜻하기만 했다.




2011/02/04 07:28 2011/02/04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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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사람들의 뇌리에서는 잊혀졌지만, 얼마 전 국립 의료원에서는 돈 없는 사람은 치료해주지 말라는 공문이 공공연히 돌아다녀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의대나 의학전문대학원을 가는 이유는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이지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니 논란이 될 이유가 별로 없는 것이다. 아니라고 반박하기에는 의대생들이 흉부외과보다는 피부과, 성형외과로 몰리는 모양새가 영 어색하다. 만약 철학과가 의대보다 더 쉽고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그리고 그만한 사회적 지위가 보장된다면, 그들은 당연히 철학과로 갔을거다. '여전히 그런 꿈을 가지고 의대를 가는 사람도 있다'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그 정도는 어디든 존재하는 예외일 뿐이다.

교대나 사대를 가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액수가 크지는 않지만, 안짤리고 정년까지 어느 정도는 안정적으로 돈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이 뿐인가. 우리 사회에서의 위인은 '돈을 많이 번 사람' 혹은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이다. '순수하다'의 의미는 세상물정 모르고 바보같다이고, '정의롭다'란 말은 앞뒤가 꽉 막히다 혹은 앞과 뒤가 다르고 위선스럽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정의로움'에 열광조차 하지 않는다.



한국계 이민 2세로 미 국무성 외교관이 된 정주리는 외교관이 되기 위한 마지막 구술시험에서 "당신은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지금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만약 한국의 국익과 미국의 국익이 충돌한다면 당신은 어느 나라 편에 서겠습니까?"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저는 한국이나 미국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정의의 편에 서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출처: 단 한줄의 승리학 - 세계를 움직이는 0.1%의 성공 비결


이 사회에서 누군가가 뭐라고 말하는지와, 그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역시 별개의 문제이다. 앞에선 번지르하게 정의로운 말만 해놓고는 뒤에서 별의 별 탐욕스러운 일을 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게 우리 나라에는 정의를 말하는 사람조차도 찾기가 힘든 것인가.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왜 잘난 척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거나,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하거나, 아니면 위선자라 생각하는 것인가. 그만큼 이 사회가 썩어있다고, 우리 스스로조차 자포자기 한 것인가.

현재가 이런 모습이라면, 미래라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생각 역시 어리석기 그지없다. '정의로워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 이 사회에서, 미래를 '정의로운 사회'로 만들어야 할 이유 역시 존재하지 않음은 당연하다. 어리석은 사람들만이 이유도 모른 채, 바보처럼 되뇌일 뿐이다.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우리 아이들이 맞이할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여야 한다고.

외롭다. 옳은 것을 행해야 하는 이유는 그러면 내가 무언가 이득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무언가 보상이 있어서가 아니다. 보상은 커녕, 정의로운게 더 손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외롭다.



"왜 착하게 살아야되요?"
"착하게 살아야 되니까, 그러니까 착하게 살아야 되는거란다."
"피~ 그런게 어딧어요."

초등학생이 선생님과 나눈 대화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딜레마다.




2010/12/08 03:27 2010/12/08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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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는 로드하우스라는 술집이 있다. 번화가라면 어디에나 있을 듯한 병맥주를 파는 집이다. 분위기도 나쁘지 않고, 메뉴도 나쁘지 않다. 맥주의 종류도 이래저래 다양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멀다. 많이 멀다. 학교에서 가려고 해도, 신촌역에서 가려고 해도, 버스정류장에서 가기에도, 그 어디서 가기에도 멀다. 어딘가로부터 멀면 어딘가로부터는 가깝기 마련인데, 신기하게도 이 곳은 그저 멀기만 하다. 신촌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크리스터 골목으로 쭉- 들어오면 그 골목 끝에 있어." 그러면 사람들은 다들 말할거다. 분위기는 어떠냐는 둥, 맛있냐는 둥, 가격은 어떻냐는 둥 그런 것에 앞서서, "아... 멀다." 라고 말이다. 그런 곳이다.

비단 신촌이 아니라도 술집에 있어서 '위치'는 상당히 중요하다. 특색이 있는 술집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여기저기 비슷비슷하다면 사람들은 가까운 곳을 찾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로드하우스라는 술집은 멀다. 이렇다할 특색이 있는 것도 아니다. 김태희였나 송혜교였나 누군가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롯데리아가 사람이 미어터졌다던데 이 곳은 그렇게 아리따운 아르바이트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건들건들 별로 성의도 없어 보이는 우람한 아르바이트생이 한 명 있을 뿐이다. 정말이지 이 곳이 장사가 잘 될 이유도, 유명할 이유도 별로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곳은 꽤나 유명하다. 항상 사람이 많다. 이리저리 생각해보아도 이 곳에 사람이 많이 찾기 시작한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뭐, 이 곳에서 틀어주는 음악은 제법 괜찮았던 것 같기는 하다. 담배 냄새는 좀 나지만 분위기도 나쁘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그보다, 이제는 이런게 아닐까 싶다. 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 것. 비록 접근성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더이상 술집이 없을 것 같은 골목 그 끝에 여전히 비슷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그 곳이 있다는 것. 때로는 차가운 바람 쐬며, 조금 걸으면서 하늘도 잠깐 봤다가,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덧 도착하는 그 자리에, 여전히 있는 그 집이라서 말이다. 밤하늘에 별이 그렇듯이.
2010/12/01 03:05 2010/12/0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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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제안서 발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운전을 하던 박사 형이 "사탕 먹을래?" 라시더니 복분자 사탕을 하나 건내셨다. 복분자, 산딸기였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등산을 많이 다녔었다. '나 이렇게 등산 잘한다!' 라고 말하고 싶었던 나는 힘들지도 않는지 항상 아버지 앞에서 뛰어가곤 했다.

그러다 가끔, 아버지께서 등산로를 벗어나 숲 속으로 들어가실 때가 있었다. 길이 아닌 곳은 괜히 불안했다. 행여 옻나무라도 있을까봐 뱀이라도 있을까봐 나는 차마 들어가보지 못하고 멀리 서서는 그냥 나오시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버지는 괜찮다며 안에서 무언가를 하셨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숲 속에서 걸어 나오실 때면 아버지의 손에는 어김없이 산딸기가 들려 있었다.

나는 사실 산딸기가 나무에서 자라는지 풀처럼 자라는지도 모른다. 항상 멀찌감치서 아버지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산딸기는 항상 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피어난다. 



산딸기 사탕을 먹는데 그 때 생각이 났다. 문득 궁금해졌다. 차마 숲 속으로 들어오지는 못하고 등산로 위에서 아빠가 안보일까 안절부절 눈을 떼지 못하던 그 때의 어린 내가, 아버지에게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


2010/11/16 06:55 2010/11/1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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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해보려 한다.

싸이월드는 자신의 계정으로 로그인을 하면 자신이 등록한 친구들의 중에서 생일이 다가오는 사람을 화면에 띄워 준다. 그래서 친한 친구의 생일이 다가오면 미리 준비하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친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생일이면 미니홈피를 찾아 생일축하의 말을 건내기도 한다. 매우 편리한 기능이다.

그런데 이 기능을 사용을 하다보면 종종 여러 사람의 생일이 겹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니까 내 친구 A와 또다른 친구 B의 생일이 우연히도 같은 날인 것이다. 아래 화면처럼 말이다. 뭐 이런 경우 뿐만 아니라, 나와 생일이 같은 사람을 살아오면서 한번 쯤 만날 수도 있다.

이렇게 나온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In Korean,
한 교실에 몇 명 이상 모이면 그 중에 생일이 같은 사람이 둘 이상 있을 확률이 충분히 높아질까?
- Wikipedia Korea

In English,
What is the minimum number, k, of students in a classroom such that it is likely that at least one student has the same birthday as the student selected by the professor?
- Behrouz A. Forouzan, "Cryptography and Network Security"

간단히 생각해보면 사람이 제법 많이 필요할 것 같다. 1년은 365일이니까, 생일이 겹치려면 제법 많은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100명? 생일이 같은 사람이 둘 이상 있을 확률이 50%를 넘기려면 365의 절반인 183명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답은 23명이다. 

스물세명만 넘으면, 그 안에는 생일이 같은 사람이 있을 확률이 50%를 넘는다. 너무 적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정말 스물세명만 있으면 그 안에 생일이 같은 사람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정말 그렇다. Wikipedia 링크를 참고하면 정확한 수학적 계산까지 확인할 수 있다. 고등학교 수학 정도 수준의 확률 계산을 알고 있다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여기 나오는 계산 결과를 나타낸 표에 의하면 50% 이상의 확률로 생일이 같으려면 23명, 99% 이상의 확률로 생일이 같으려면 57명만 있으면 된다.



이게 바로 컴퓨터과학, 특히 보안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는 개념 중 하나인 Birthday Paradox, 혹은 Birthday Problem이라 불리는 질문이다. 단 23명만 있으면, 그 중에는 생일이 같은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게 보안의 어디에 사용될까?

보안Security에는 몇 가지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기밀성Confidentiality, 무결성Integrity, 가용성Availability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사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지만 어려워보이니 다른 것은 제껴두자. 이 Birthday Paradox는 대표적으로 무결성과 관련된 분야에 많이 응용된다. 물론 무결성 이외의 분야에도 종종 사용되기도 한다.

보안을 생각할 때 흔히 '다른사람 모르게' 혹은 '비밀스럽게'와 같은 느낌을 쉽게 떠올리게 되는데, 사실 모든 것이 비밀일 필요는 없다. 예를들어 유언장을 생각해보자. 유언장은 비밀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어야한다. 단, 한가지 반드시 지켜져야할 것이 있다면, 유언장은 위조되어서는 안된다. 이게 무결성이다. 내용을 숨기는 것과는 별개로 그 내용이 변해서는 안되는, 그걸 무결성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무결성 이라는 걸 어떻게 보증할 수 있을까. 어떤 내용이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값을 넣어두는거다. 예를 들면 이렇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좋은 날에 연구실에서 컴퓨터 하고있는 날 어여삐 여겨 100원 씩 보내주기로했다! 전세계 인구가 60억이니 6000억원이 들어오는거다. 상상만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이 돈이면 우리 학교에 컴퓨터과학과 빌딩을 세우고 내가 좋아하는 죽을 때까지 마음껏 사먹어도 돈이 남는다!

어째뜬 나는 내 홈페이지와 이곳저곳에 내 계좌번호 1234-5678-90 을 올리고 다녔다. 이제 중요한건 내 계좌번호가 정말 1234-5678-90 이 맞다는걸 보장하는 일이다. 만약에 해커가 이 숫자를 자기 계좌번호로 바꿔버리면 나는 돈을 한푼도 받지 못한 채 빈털털이가 되고 해커는 내 돈을 몽땅 가져갈 수 있게된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나는 아래 내용을 CNN, BBC, KBS를 포함한 전 세계에 방영하기로 했다.

'계좌번호를 13으로 나눈 나머지가 10이면 제 계좌번호가 맞습니다!'

물론 계좌번호 전체를 방송으로 뿌려버리면 되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저렇게 간단한 계좌번호가 아니라 엄청난 양의 데이터에 대한 무결성을 체크해야 하기 때문에 그 모든걸 방송에서 이야기하는건 불가능하다.

자, 이제 확인해보자. 1234-5678-90을 계산하기 편하도록 숫자로 바꿔서 1234567890으로 만들고, 이걸 13으로 나누면 몫은 94966760, 그리고 나머지는 10이 된다. 이제 사람들은 내 계좌번호가 맞는지 확인해 보려면 계산기로 두드려 13으로 나눠보기만 하면 된다.



이게 간단하게 살펴본, 현재 보안에서 무결성을 검증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Birthday Paradox는 언제 사용되느냐고? 바로 이 무결성을 깨뜨리기 위한 공격 방법이 될 수 있다.

내 친구 이브Eve라고 있다. 왜 그 아담과 이브할 때 그 이브다. 이브가 해킹을 해서 저 돈을 빼돌리려고 한다. 나쁜 친구다. 그런데 난 이미 무결성 검사를 위해 '13으로 나눠서 나머지가 10'이라는 내용을 이미 전 세계에 방영해버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계좌를 계속 만드는거다. 언제까지? 13으로 나눠서 나머지가 10이 되는 계좌번호가 나올 때까지. 몇 번 만들다보면 그런 계좌 하나 만드는 건 사실 그리 어렵지 않을거다. 예를들어 계좌를 만들다보니 1234-5678-51 이라는 계좌번호가 나왔다. 1234567851을 13으로 나누면 몫은 94966757이 되고 나머지는 10이 된다. 즉, 13으로 나눠서 나머지가 10이 되는 내 계좌번호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다. 여기저기 공개되어 있는 1234-5678-90 이라는 계좌번호 마지막 두 숫자를 90에서 51로만 바꾸면 된다. 전부 다 고치면 내가 눈치챌 수 있으니, 그 중 일부만 고칠 수도 있다. 그러면 전세계 사람들이 나에게 보내려 했던 돈은 내가 아닌 이브에게 흘러들어가게 된다.



물론 현실에서는 '나누기'와 같은 간단한 연산을 사용하지도 않고, '나머지가 13' 같은 취약한 값을 이용하지도 않는다. 훨씬 복잡한 연산과 엄청나게 큰 수를 이용하는데, 문제는 어찌되었든 간에 이브같은 나쁜 사람이 '나눠서 13이 되는 또다른 계좌번호'를 찾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공격할 수 있는거다. 그럼 13 대신 정말정말 엄청나게 큰 수를 사용해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얘를들어 1000 자리 숫자같은?

문제가 된다. 바로 Birthday Paradox 때문이다. 숫자가 엄청 많이 커지더라도, 그 숫자와 같은 값을 지니는 똑같은 다른 계좌번호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쉽다. 1년은 365일이나 되지만, 생일이 같은 두 사람을 찾으려면 23명만 모으면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Birthday Paradox는 위에서 얘를 든것처럼 공격에도 사용될 수 있고, 또한 어떤 보안 알고리즘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 뿐만아니라 컴퓨터과학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도 충분히 응용될 수 있을 듯 하다.

재미있지 않은가? 이런게 있다는 것이.

아참, Birthday Paradox 때문에 해킹당할 걱정은 어느정도 놓아두어도 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무결성을 검증하는 알고리즘은 이런 Birthday Paradox를 이용한 공격에도 충분히 안전한 것들이니까.











2010/09/25 14:15 2010/09/2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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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오랜만에 할머니댁 와서보니
집은 새로 지었는데 평상은 그대로네
아이쿠야 걸터앉아 세상을 훑어보니
하늘엔 별 보이고 바람은 살랑살랑
아 좋다

커다란 달한덩이 저하늘에 두리둥실
내일되면 오신다는 삼촌이랑 저 달이랑
가을전어 쐬주 한 잔 평상걸터 먹으며는
이게바로 한가위고 이세상에 무릉도원
캬 좋다
2010/09/21 01:46 2010/09/21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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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을 뺀다.
왠지 캔맥주를 따는 소리가 듣고싶어서였다.

ET를 찾고 있는 전파망원경의 빨간 불이 깜빡인다.
맑았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하늘도 맑았다.
매미우는 새벽 네시의 하늘은 자주빛이다.

가을처럼 서늘하다.
아래 지방에는 태풍 '말로'가 지나갔단다.
바람불고 비내리고, 어머니가 거긴 날씨가 괜찮냐며 전화가 오셨다.
여기서는 '말로'만 태풍이었단다.
그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맥주 캔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
누군가, 괜히 노천극장에 와서는 하늘이나 바라보고 있었나보다.
2010/09/08 05:23 2010/09/08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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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끝난 롯데와 삼성 간의 야구 경기. 6회. 스코어는 5:4로 한 점 뒤지는 상황. 바뀐 투수로 나승현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신인 드래프트 지명에서 류현진보다 높은 순위로 지명된 선수였으나, 프로에 와서 빛을 보지 못한 선수였다. 동기 류현진은 2006년 데뷔시즌 MVP에 이어 올해, 2010년에도 트리플 크라운을 눈앞에 두며 그야말로 '괴물'의 피칭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거의 1군에서의 등판 기회를 잡지 못했던 그가 드디어 올라온 것이었다.

얼마나 기다리던 1군 무대였을까. 하지만 그 부담감 때문인지, 나승현은 아웃카운트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고 4연속 2루타를 포함해 그야말로 '끊임없이' 연속안타를 맞으며 와르르 무너진다. 땀을 뻘뻘 흘리며 눈에 띄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나승현. 하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투수를 교체하지 않았다. 3개의 아웃카운트를 온전히 그에게 맡긴 것이었다. 결국 한 회에만 5실점, 박빙이었던 승부의 분위기를 거의 다 내주고 만다.

그리고 7회에 마운드에 오른 것은, 또다시 나승현이었다. 한번 더 기회를 준 것이었다. 자신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나승현은 첫타자 진갑용에게 다시 2루타. 그리고 뒤이어 연속안타를 맞으며 결국에는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되지만, 그 역시 느꼈을 것이다. 감독이 자신을 믿어주었다는 것을. 아마, 그의 다음 등판은 오늘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투수를 교체할 때 꼭 자신이 직접 마운드 위까지 나온다. 대부분의 감독이 투수 코치를 대신 내보내는 것과는 다르다. 때문에 롯데의 투수 교체는 판단하기가 쉽다. 로이스터 감독이 올라오면 투수교체, 투수코치가 올라오면 단순한 타임이다.

2008년 4월 25일, 대 삼성전. '전국구 에이스' 손민한이 등판한 경기였다. 롯데의 2:0 리드 속에서 8회까지 무실점으로 역투하던 손민한은 결국 9회에도 등판한다. 한 이닝만 더 지키면 완봉승. 하지만 이미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던 터라 불펜에서도 마무리 투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역시 체력이 문제였을까, 그는 결국 연속 안타를 내주며 9회말 2사 2-3루 위기상황에 몰리게된다. 원 아웃만 더 잡으면 완봉승. 하지만 안타 하나면 팀의 승리가 날아가는 상황. 이 때, 로이스터 감독은 마운드로 올라간다. 투수교체. 사직구장의 롯데 팬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선다.

로이스터 감독은 마운드 위에서 손민한에게 몇 마디를 건낸 후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그는, 더이상 아무런 제스쳐도 취하지 않은 채 그대로 돌아서 내려왔다. 투수를 교체하지 않은 것이다. 롯데 팬들은 모두 일어서서 환호성을 질렀다. 감독이 보여준 에이스에 대한 신뢰. 직접 마운드 위에 걸어나가서 그가, 팀 전체가, 그리고 사직구장을 가득 메운 팬 모두가 그를 믿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고 들어간 것이었다. 로이스터가 직접 마운드 위로 올라갔지만 투수 교체를 하지 유일한 경기였다.

안타깝게도 손민한은 그의 절친한 친구 진갑용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고 결국 마운드에서 내려온다. 삼성은 이어진 10회 초에 1점을 내고, 10회 말 삼성은 '돌부처' 오승환을 마운드에 세웠지만 결국 조성환이 끝내기 안타를 치며 롯데는 4:3으로 역전승한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조성환은 '잘 던졌던 민한이형 때문이라도 너무나 이기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 후인 5월 13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손민한은 다시한번 선발로 등판했고 8이닝동안 무려 12개의 탈삼진으로 자신의 1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우며 팀의 4-1 승리를 이끈다. 경기 후 인터뷰는 이랬다. '이 경기만큼은 꼭 이기고 싶었다.'



프로야구 8개 팀 중에서 그가 오기 전까지 롯데는 8-8-8-8-5-7-7위를 기록했다. 시즌 133경기 역대 최저승률을 기록한 것도 이때다. '손민한 8이닝 1실점' 이런 큼지막한 부산지역 스포츠 신문의 기사 밑에는 항상 자그마한 글씨로 '팀은 1:0으로 패배'라고 적혀있었다. 타팀 팬들이 '꼴데'라고 놀린 것도 이때부터였고, '너희가 응원해라 우리가 야구할게 ' 라는 롯데팬들의 글귀가 화재가 된 것도 이때였다. 수 만명이 들어가는 사직구장에 한 경기에 관중수가 69명인 적도 있었다. 프로야구의 레전드이자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였던 최동원도 팔아버렸고, 마해영도, 전준호도 팔아버렸다. 염종석과 주형광은 꼴찌팀에서의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어야했다. 그런 롯데였다.

그런 롯데가 로이스터 감독이 오고 나서 첫 시즌에 3위를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은 4위, 그리고 이번 시즌도 4위가 사실상 확정적이다. 벤치 클리어링 빈볼 등으로 인한 선수들 간의 감정충돌로 인해 양팀 선수 전체가 그라운드 위로 뛰쳐 나오는 상황이 벌어지면 롯데 덕아웃에서 가장 먼저 뛰쳐 나오는 사람은 바로 로이스터였다. 투수교체를 할 때마다 꼬박꼬박 마운드에 나가서 이전 투수의 등을 두드려주고, 다음 투수의 손에 직접 공을 건내주는게 바로 로이스터였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역사상, 아니 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에서조차 감독의 연임을 위해 팬들이 모금을 해서 신문광고를 낸 적이 있었던가.

1위를 못해도 좋다. 지금처럼 화끈한 야구를 하는 롯데가, 선수들을 믿는 야구를 하는 로이스터가 좋다. 나는 로이스터를 지지한다.




2010/09/05 21:31 2010/09/05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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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따님 동아리 팀이 UN 어쩌고 하는 대회에서 1위를 했단다. 그야말로 세계 1위다. UN 본관에 가서 최종 결승을 했다신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총장님이랑 바베큐 파티도 한단다. 연대 다닌다는 말, 나이가 나랑 비슷하다는 말을 올해 초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친한 고등학교 후배 녀석과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아끼는 후배가 오랜만에 반가워서 제법 많이, 늦게까지 마셨는데도 이상하게 말짱했다. 평소에는 한 잔만 마셔도 몸이 거부하더니. 아, 갑자기 생긴 공돈으로 마셔서 더 그런지도.

토요일은 연구실도 안나가고 푹 쉬었다. 몸살 났다는 변명까지 하고. 하긴, 몸살이 난건 사실이다. 연구실을 못갈 정도로 심했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푹 자버렸다. 몇 시간을 잤는지. 저녁에 일어났다.

친했던 친구와 오해를 풀었다. 좀 빢빢한 친구라, 정말 다 풀어준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정도면 남은 것들은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

농구를 했다. 온 몸이 땀에 흠뻑 젖도록 한건 제법 오랜만이다. 땀에 흠뻑 젖고도 기분이 좋았던 것 역시 오랜만이다. 돌파를 많이 했던 것도 오랜만이다. 뭐 날 막은 사람이 좀 느렸던 탓도 있지만. 이것저것 오랜만이구만. 만만만.

국립중앙박물관에 갔었다. 백제 금동 대향로, 신라 금관. 나도 1000년 뒤의 인류를 감동시킬 수 있을까.

자그마치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을 착각했다. 어릴 때부터 가끔 헤깔리긴 했는데, 오늘은 5월 11일. 응? 11일? 그러고보니 5월 10일 이란 날짜가 왠지 모르게 입에 익어서 뭐였더라 생각하다보니, 덜컥 부모님 결혼 기념일이 틀림없다는 착각을 해버린 것이다. 아, 난 정말 불효자야. 이렇게 못난 아들이 어디있을까. 속상할대로 속상해져서는 그 새벽에 부모님한테 문자를 보냈다. 죄송해요. 그리고 날이 점점 밝아진다 싶어지자 마자 바로 전화를 드렸다. 졸린 목소리의 아버지. "주무셨어요?" "아니 이제 일어났다." "아빠 어제 무슨 날이었잖아요!" "음? 어제가 아니라 내일이지." "아, 12일이에요? 아~ 10일 12일 어쩐지 입에 둘 다 익더니!" 난 이렇게 또 내가 불효자고 못난 아들임을 온 세상에 떠벌리고 있다. 그래도 왜이렇게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아, 다행이다. 정말.

한 주의 시작이다. 한 주의 시작인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기왕 내리는 김에 깔끔하게, 시원하게, 씻겨졌으면 좋겠다. 내 신발은 비오면 다 젖는데, 그건 좀 걱정이다.






괜히 그럴 때가 있다.
아무 이유도 없이, 혹은 전혀 상관 없는 이유로, 갑자기 의욕이 넘치고 동기부여가 되는 경우가.

지금의 난, 참 오랜만에 내 맘에 들 정도로, 적극적이다.




2009/05/11 07:18 2009/05/11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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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로그에는 쓰레기통이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처음부터 있었던건 아니다. 언젠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억지로 포스팅 한 날이 있었다. 두고두고 찝찝하다가, 결국 그 글을 지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이미 달려있는 리플들... 블로그를 가진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누군가로부터 받는 리플이란건 너무나도 소중해서 그것들을 지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이 쓰레기통이라는 카테고리다. 내 마음에 영 들지 않는 글을 담는, 일종의 휴지통이랄까. 그러고보니 휴지통이 그래도 어감이 좀 더 부드러운데 왜 굳이 쓰레기통이란 단어를 썼을까 싶기도 하다. 아마 그 때 내 감정이 좀 과격했던 듯 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쓰레기통 카테고리는 참 불쌍하다. 쓴 사람으로부터 버려지는 글이 모이는 곳이아닌가. 게다가 더 서글픈건, 처음부터 쓰레기통 카테고리로 정해져서 쓰여지는 글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말은 곧, 버려지기 위해 쓰여지는 글이란 뜻이다.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안타깝게도, 지금 쓰고있는 이 글 역시 분류는 '쓰레기통'으로 되어 있다. 딱히 하고싶은 말도 없고, 깔끔한 수필을 적을 의욕도 없다.

사실 할 말이 없었던건 아니다. 내 블로그를 자주 찾아주시는 부모님이나 종종 놀러오는 친구들은 이 글을 읽기 전에 알아차렸겠지만, 스킨을 새로이 바꿨다. 얼마전에 올블로그를 보니 유명한 블로거는 '스킨을 바꿨습니다'라는 포스팅으로도 실시간 인기글에 오르기도 하던 것을 보면 누군가는 그렇구나, 얘가 스킨을 바꿨구나. 예쁘다 혹은 예전이 더 낫다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얼마나 무의미한 짓인가. 어찌보면 지극히 타인의 관심을 받고싶어하는 현대인의 외로움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너무 심한 비약이려나.

스킨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무언가 바꾸고 싶었던거다. 흔한 표현으로, '변화가 필요했다.'
무기력하고 의욕없이 생활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뭐라도 하나 바꿔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스킨을 바꾸고, 또 글을 쓴다. 쓰레기통에 버려지기 위한 글일지라도 말이다.

다행스러운건, 스킨이 참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이 글 또한 썩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덤으로, 나도 다시 얼른 부지런해졌으면 좋겠다.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공자에 알라신까지, 저 좀 도와주세요.



날씨가 너무 좋다. 게다가 주말이다. 오랜만에 하늘도 보고, 심호흡도 크게 하고.
나도 힘낼테니, 당신도 힘내세요!
스킨도 이렇게 싱그럽잖아요. :)




2008/11/16 09:04 2008/11/1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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