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 프로그래머 The Pragmatic Programmer
앤드류 헌트 Andrew Hunt, 데이비드 토머스 David Thomas
김창준, 정지호 옮김
인사이트

이 책은 산지 2년은 된 거 같다. 그런데 이제야 다 읽었다. 아무리 바빴다고 하더라도, 2년 동안 책 한권 다 못읽을 정도로 바빴던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내 전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이 책을 내팽개쳐 놓은 걸 보면, 나는 분명 귀차니스트다.


프로젝트가 시작하기도 전에 이 프로젝트는 망할 거라는 느낌이 든 적이 있는가?
- p317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느낌 너무 많이 받아봤거든! 내가 처음 프로그래밍이란 것을 거의 전혀 못할 때, 수업에서 프로젝트가 나올 때마다 그랬었다.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아둥바둥 거려봤고, 다행히도 그 덕에 지금 여기까지라도 온 거겠지-

완성이라는 것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빼낼 것이 없을 때 얻게 되는 것이다.
- 생텍쥐페리Antonie de St. Exuepery, '바람과 모레와 별들 Wind, Sand, and Stars', 1939
- p319

오, 이 유명한 말이 생텍쥐베리꺼였나? 난 다른 사람이 한 말로 알고 있었는데-

어떤 방법의 거짓된 권위에도 넘어가지 말라.
- p349
이 말, 좀 중요한 것 같다. 다른 어떤 학문보다 '거짓된 권위'에 맞서는 것이 자유로운 학문이 컴퓨터과학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 학문적 요소와는 별개로, 컴퓨터 세상에는 아직 이 거짓된 권위라는 것이 제법 많아보인다.

나이가 듦에 따라 잃게 되는 두 번째가 기억력이기 때문에,
- 저자 주: 첫번째가 뭐지? 까먹었다.
- p366
이런 정도의 위트가 있어줘서, 그래도 이런 지겨울 수 있는 내용이 즐거웠다.



사실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은 아니었다. 단지, 중요한 것, 그리고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쉬 행하지 못하는 것들을 지적하고 있었다. 하긴, 그걸 명확하게 지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것인지도 모르지.

이 책의 마지막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신이 작성한 코드에 자신의 닉넥임으로 서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프로페셔널 함이, 지금의 나에게- 앞으로의 나에게 필요할 거다. 이 코드, 아이디어, 알고리즘, 논문, 다른 사람이 아닌, 나, ipuris가 만들었습니다, 하는 프로페셔널리즘 말이다.




2009/10/21 00:38 2009/10/21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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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Faust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김수용 옮김
책세상




끊임없이 더 높은 곳을 향하는 파우스트와, 그를 유혹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그리고 피로 맺은 악마와의 계약. 세상 속으로, 신화 속으로 떠나는 여행.
이렇게 적으면 마치 흥미로운 판타지 소설을 보는 듯한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은 그 이미지가 그렇듯이, 재미없다.

그런 재미없는 파우스트를 읽고 난 후의 감상이라, 이건 정말 어려운 문제다. 글을 읽고서는 마음이 움직여야 감상이란 것도 알아서 줄줄 적히는 법인데, 그렇지가 않으니 아는 것도 없이 파우스트에 대한 분석이나 평론을 적을 수도 없고 그야말로 난감한 것이다.



현대의 문학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을 산만한 구성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비유가 과도하게 사용되었고, 뜬금없는 사회 풍자와 당시에는 옳게 받아들여졌던 잘못된 과학적 추론은 그렇지 않아도 가냘픈 이해의 흐름을 끊임없이 위협했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화려한 수사에도 나는 아무 것도 상상할 수가 없었고, 나름의 각운과 운율을 가지고 있을 대사들은 한글로 번역되자 그저 '이상한 곳에서 엔터가 쳐져 있는 글'로 변해버렸을 뿐이었다.

이렇게 이 대부분이 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걸 알면서 궁시렁거리면서도 결국 며칠에 걸쳐 이 책을 다 읽은 건, 어디선가 이런 류의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있기 때문이다.'



인기많은 소설, 이를테면 교보문고 소설 베스트셀러 란에 꼽혀있는 책들을 보고 느껴지는 것은 '재미'이다.
하지만 '고전'이라 일컫어지는 글을 읽으면 느껴지는 것은 재미가 아니다. '무게'다.

모든 '고전'이라 일컫어 지는 작품들이 그렇듯이 파우스트 역시 제법 괜찮은 결말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의 소설들이 가지는 '신선한 반전'이라든가 '눈물나는 감동', 혹은 '미어지는 아픔'이나 '침전하는 우울', '환희'와 같은 류의 결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제법 괜찮은 결말'이란 그렇게 가볍지 않다. 고전을 덮으면 찾아오는 것은 감상보다는 고뇌다. 그리고 그 고뇌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에게 주는 의미가 있기에, 그 글은 '고전'일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무언가를 하나 떠안았다. 그리고 그 질문에, 내 가슴은 아직 교과서적인 답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와 참 닮은 파우스트다.



하나, 의외였던 것이 있다. 난 이 파우스트라는 것이 대단히 심각한 주제의 글인줄 알았다. 이를테면 종교나 철학에 대한 회곡인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맙소사, 읽고 나니 이건, 그러니까, 러브 스토리다.






2009/01/05 20:45 2009/01/05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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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L' Etranger
알베르 카뮈 저
김화영 옮김
책세상




1.

예상 외의 순간에 글이 끝나버렸다. 마무리가 허술하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남은 페이지가 많음을 보며 글이 계속 이어리지라 태연히 짐작했던 것이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평론들을 보며, 나는 두려움에 빠진다. 이들의 분석은 분명 내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 분석이란 내가 이 책을 읽은 감상과는 어느정도, 혹은 완전히 동떨어져 있을 것 역시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는 그 평론을 읽으며 내가 느끼던 것을 일종의 잣대로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말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음악조차 들려오지 않는, 이 새벽의 적막 속에서 있는 그대로 감당해야 했던 그 모든 것들이 무자비하게 재단되는 것이다.

사실 나는 느낀 것이 없었다.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은, 때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겠지만 때로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내 눈은 내 머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글을 읽어가며, 내 머리는 무언가를 느끼면서도 글에 집중할만한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방인, 너무나도 유명한 이 글의 제목 때문인지, 나는 그 단어, '이방인'으로부터 벌써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벌써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방인일까. 게다가 추측까지. 이래서 이방인이 아닐까. 하지만 뫼르소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네가 살인범으로 고발되었으면서 어머니의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게 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인간애라는 단어는 너무나 식상한 것이라서 쓰기가 두렵다. 게다가 더욱 두려운 것은, 그 단어는 어떤 감상조차 식상하게 만드는데, 일종의 틀 안에 모든 것을 가둬버리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하고 싶은 것이 그 틀 바깥에 존재할 때조차도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모두가 수긍 가능한 것이었고, 그래, 이를테면 논리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뫼르소가 허무하게도 선택 당해야했던 이 사회의 메커니즘 역시, 논리적이었다. 그리고 그 어느 것도 인간적이지 않았다. 뫼르소 역시 논리적이었지만, 또한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그는 솔직했고, 선했다. 그게 그가 죽어야할 이유가 되었으며, 그런 점들은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어찌보면 착한 척이다. 인간애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은 말이다. 책의 뒷표지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읽게 된 짧은 샤르트르의 이방인 해설처럼, '그는 단지 묘사한다. 카뮈는 다만 제시할 뿐, 원래가 정당화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인 그것을 정당화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정말이다.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

다시 음악을 켠다.
이런, 분위기 파악 못하고 god의 거짓말이 흘러나온다. 다행인건, 노래 제목이라도 그럴 듯 하다는 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제목은 The Liar 가 되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2.

내 감상을 적고서는 평론이란걸 읽기에 앞서, 책의 서론 다음에 있던 '《이방인》에 대한 편지'를 읽었다.
역자에 의하면,
1954년, 어떤 독일 친구가 알베르 카뮈에게 《이방인》을 연극으로 각색하여 상연하고자 한다는 계획을 제시한다. 이 글은 그에 대한 회답으로 쓴 알베르 카뮈의 미공개 서한인데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극히 명료하게 나타나 있어서 의미 심장하다. 《어떤 책의 역사 -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Histoires d' un livre : L' Etranger d' Albert Camus》(Paris, IMEC, 1990)에 실린 것을 우리말로 옮겼다.
란다.

그곳에 이런 말이 있었다.
..뫼르소로 말하자면 그에게는 긍정적인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입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말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도 의미합니다. 뫼르소는 판사들이나 사회의 법칙이나 판에 박힌 감정들의 편이 아닙니다. 그는 햇볕이 내리쬐는 곳의 돌이나 바람이나 바다처럼(이런 것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존재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 책을 이러한 측면에서 해석해본다면 거기서 어떤 정직성의 모럴을, 그리고 이 세상을 사는 기쁨에 대한 해학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찬양을 발견할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어둠이라든가 표현주의적인 희화(戱畵)라든가 절망의 빛 같은 것은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 p13~14
어떡해, 나 순간 소름돋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2009/01/01 07:55 2009/01/01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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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저
문학동네



누군가의 글을 읽다 보면,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던 천상병 시인이 그렇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하던 윤동주 시인이 그렇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던 김소월처럼 은은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던 김지하 시인처럼 터질듯이 외치기도 하지만 그 언어들 속에 담겨있는 것은 역시, 시선이다.

참 오랜만에 집어든 시집이었다.
안도현, 익숙한 이름이다. 예전에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로 나에게 처음 다가온 시인이었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사춘기였기 때문일까, 내가 서점으로 달려가 읽었던 안도현 시인의 시집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그런 것이었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연민, 삭막한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인간애의 그리움.

이 시집, '바닷가 우체국'에서도 여전히 안도현 시인은 낮은 곳에서 부터 세상을 바라본다. 하지만 예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편안하다. 부드러워졌다.

茅亭모정 아래

한 떼의 잠든 일꾼들
모두 臥佛와불 같다.

미륵님들은
왜 누워 계시나?
쌔빠지게 일하는 사람들,
쉴 줄도 놀 줄도 모르는 사람들,
좀 쉬라고,
휴식이란 이렇게 하는 거라고,
몸소 모범을 보이며 누워 계신 게야

낙숫물

빗방울하고 어울리고 싶어요
깨금발로 깨금발로 놀고 싶어요
세상의 어깨도 통통 두드려주고 싶어요

'너에게 묻는다'가 세상에 던지는 거친 질문이라면, '茅亭 아래'는 세상을 향해 짓는 미소다. 여전히 안도현 시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부대끼며, 지친 세상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하지만 내가 이 시집 '바닷가 우체국'에 담겨 있는 것은 그런 목소리들이 다가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이 담겨있다. 사랑이다.

그렇다 꽃대는
꽃을 피우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자기 몸을 세차게 흔든다
사랑이여, 나는 왜 이렇게 아프지도 않는 것이냐

몸 속의 아픔이 다 말라버리고 나면
내 그리움도 향기나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
살아남으려고 밤새 발버둥을 치다가
입 안에 가득 고인 피,
뱉을 수도 없고 뱉지 않을 수도 없을 때
꽃은, 핀다.

- '꽃' 중에서

연락선

네가 떠난 뒤에 바다는 눈이 퉁퉁 부어올랐다
해변의 나리꽃도 덩달아 눈자위가 붉어졌다
너를 잊으려고 나는 너의 사진을 자꾸 들여다보았다

사실 어딜 가든 흔한 것이 사랑에 대한 담론이다. 그래서 유치하기 쉽고, 이기적이기 쉽다. 하지만 그의 시에서 말하는 사랑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왜 이렇게 아프지도 않는 것이냐, 몸 속의 아픔이 말라버리고 나면 그리움에서도 향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는 그의 독백은, 아직은 사랑을 말하기에는 어린 나에게도 아프게 스며든다. 사랑해봤다면, 그리고 이별해봤다면, 너를 잊으려고 나는 너의 사진을 자꾸 들여다본다는 그의 말에 가슴이 시리리라.



어쩌면 안도현 시인은 변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보는 내 시선이 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유없이 반항적이고 세상에 불만이 가득하던 사춘기에서,
이제는 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세상을 따스하게 바라볼 줄 아는, 조금은 자란 모습으로.

내 친구는 풀숲을 더듬거리며 오리
길에 왜 사람이 없냐고
물동이 이고 가는 아낙이라도 그려보라 하겠지
사람을 그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뻔히 알면서
예끼, 짐짓 모른 체 농을 걸어오겠지

- '이발관 그림을 그리다.' 중에서

여전히 안도현 시인은 말한다. 편안하게. 하지만 가볍지가 않다. 그렇다고 숨막힐듯 무거운 것도 아니다. 미소지을 수 있는, 동시에 아픈 곳을 다독일 수 있는 그런 말 들이다. 어느덧 벌써 쉰을 넘기신 아버지의 따스한 목소리처럼.



2008/12/24 13:40 2008/12/2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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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
Linked - The New Science of networks

A. L. Barabasi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 김기훈 옮김
동아시아




1.
'복잡계'. 어디선가 들어봤던 말이지만, 별 관심없이 지나쳤던 단어이다.
대학원 진학에 대해 고민하던 중, 카이스트의 첨단 네트워킹 연구실에서 Social Networking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그 랩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었다. 그쪽 연구에 관심이 있는데, 좋은 논문이나 관련된 자료를 어디서 구할 수 없느냐고. 그 답으로 소개해 주신 책이 바로 이 'Linked'였다.

'Linked나 Nexus 같은 책은 이미 읽어봤죠?' 라고 묻는 교수님의 답장을 받고서 그 책의 제목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난 심히 부끄러웠는데, 찾아보면 볼수록 이 분야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책인듯 했다. 'Linked'라는 검색어로는 중앙도서관에서 너무 많은 책이 검색되어, 이리저리 찾아보니 Social Network, 복잡계 네트워크와 관련된 분야에서 추천하는 책으로 여러 군데 소개가 되어 있던 것이다.



2.
일반적으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그저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내가 알고싶었던 내용들, 그리고 어렴풋하게 그리고 있던 이 Social Network의 구조들, 그 모든 내용이 이 책안에 담겨 있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10년 전에 이 사람이 했었구나.'
내가 생각하던 그 고민들, 발견들이 이미 수십편의 직접적으로 관련된 논문이 나오고, 수백편의 연관된 논문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쉽지만,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학문 분야가 존재하기는 한걸까'라는 걱정을 하던 나에게는 다행스럽게 다가오기도 했다.



3.
책의 내용으로 들어간다면, 한마디로 Network에 관한 내용이었다.
네트워크하면 흔히 떠올리게 되는 인터넷이나 휴대폰, 혹은 LAN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의미의 네트워크,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던가, 기업간의 상호작용, 혹은 국가 사이의 관계 등, 모든 '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이런 '관계'들이 모두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런 네트워크를 수학과 컴퓨터과학에서 말하는 Graph이론으로 분석하게 되는데, 인간 몸의 DNA 구조와 유전자들의 상호작용에서부터 초국적 기업과 작은 기업 간의 관계에서까지, 전혀 관련없을 것 같은 곳에서까지 동일한 구조가 발견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척도없는 네트워크 Scale Free Network'가 되겠다.



4.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은 바로 이것이다.
'무작위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좀 많고, 누군가는 좀 적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다 비슷비슷한 수준이고,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곧 무작위 네트워크 모델Random Network Model이다.

하지만 그 이후,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이론이 나온다. 바로 와츠-스트로가츠 네트워크 모델Watts-Strogatz Network Model이다. 즉, 대부분은 비슷한 수준의 관계를 가지지만 일부는 다른 사람들보다 평균치 이상으로 더 많은 연결선을 가진다는 것이다. 인기가 많은 사람, 인간관계의 폭이 넓은 사람과 같은 사람들이 이에 적용될 수 있다.

위의 두 모델은 관계의 수를 그래프로 그리면 정규분포 곡선을 따른다. 즉, 많이 아는 사람도 있고 적게 아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제안한 것은 척도없는 네트워크 모델Scale-Free Network Model이다. 즉, 와츠-스트로가츠 네트워크 모델에서 말하는 것 이상으로, 정규분포 그래프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극단적으로 많은 수의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일반적인 사람은 100~300명 정도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지낸다면, 1000명 이상의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앞의 두 모델에서 이런 사람은 확률적으로 거의 나타나기 불가능하지만, 척도없는 네트워크 모델에서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일정 수 이상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5.
책의 앞부분은 이러한 모델의 변화 단계를 적절한 예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파티장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모습에서 발견되는 네트워크라던가, 유명한 영화배우의 인간관계 등을 예로 들면서 말이다.
어떤 모델로 설명할 수 있는 예시들, 그리고 그 한계가 발견되어 새로운 모델이 제시되는 과정 등을 매우 상세하면서도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에 저자가 제안한 척도없는 네트워크 모델의 경우, 이 모델이 이 세상의 대부분의 네트워크에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가 이 책의 종반부까지 이어진다.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인터넷이나 생태계 이외에 9.11 테러와 아시아의 경제위기까지 '네트워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생소한 것들까지 예로 소개되며 분석하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다.

물론 각 분야에서 발견되는 동일한 특징들을 보여주는 것은, 뒤로 가면 갈수록 읽기에 지겨워지는 면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소설책이 아니다.



6.
이러한 네트워크의 구조흔히 Topology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유사한 구조를 가진 네트워크에서는 유사한 변화/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면 더 쉬운데, 척도없는 네트워크의 경우 두가지의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비슷한 수준의 노드들이 서로 경쟁하는 형태', 그리고 '승자가 독식하는 형태'가 바로 그것이다.

바꿔 말하면, 척도없는 네트워크 모델에 따르는 네트워크의 경우 극단적으로 많은 연결선을 가진 무언가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형태로 변할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사회에 적용시켜보면 더욱 흥미롭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의 결과 적절한 선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기업만이 독점적인 형태로 존재하게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정치적인 관점에서 말한다면, 여러 개의 기구 혹은 국가가 서로 견제하는 형태로써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힘을 가진 어떤 기구 혹은 국가가 나머지를 지배하는 형태가 나타날 수 있음을 말한다.
사회학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어떤 집단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독재자가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정말 척도없는 네트워크 모델을 따른다면, 바로 이런 모습들이 가능함이 수학적으로 증명되는 셈이다. 어떤 큰 변화나 사건 없이, 자연적으로 말이다.



7.
이 책은 2000년대 초반에 쓰여졌다. 그런데 이 책에서 발견되는 이 구절은, 마치 지금의 세계적인 경제침체를 예언하는 듯 하다.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연쇄 도산 사태가 빠르게 성장하는 개발도상국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일어난 부작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과 같이 충분한 현금이 있고 전문가들이 주의 깊게 살피는 안정된 경제에서도 이러한 연쇄 도산 사태는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안정된 경제라도 상호 간의 연관성 때문에 취약점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예로 닷컴의 거품이 붕괴하면서 일어난 연쇄적인 파급 효과를 들 수 있다.
- p341 

닷컴의 붕괴보다 더욱 적절한 예시가, 지금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다.
신자유주의 아래 안정적으로 발전해가는 것만 같아 보였던 전세계가 동시다발적으로 불황과 침체를 겪고있다. 그 시발점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 미국이었다.



8.
영화 '굿 윌 헌팅'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주인공 윌이 대학 교수에게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이런 책 말고 이 책을 읽어보세요. 정말 대단해요. 머리가 뻥 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니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랬다.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과도 흡사한 기분인 듯 하다. 내가 흥미를 가진 분야에 대한 책이라 오히려 더 충격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놀라운 책이다.





2008/11/23 17:35 2008/11/2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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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줄의 승리학 - 세계를 움직이는 0.1%의 성공 비결
김형섭 저
(주)밀리언하우스





0.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책.

그러고보니 아버지께서 직접 책을 골라서 보내주신게 어릴 적을 빼면 처음인거 같다.
갑자기 기억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아버지께서 만화책을 사들고 오셨던 날이.
그 날 얼마나 놀랐던지...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던 나와, 나보다 더 놀라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 그리고 보니 영어 삼국지도 아버지께서 사자고 하신거였지,
그런데 사실 영어 삼국지는 한번 쭉 읽고는 다시 안읽었다. 영어라서 싫었다기보다는 삼국지 내용 자체가 너무 재미없게 쓰여져있었다. 차라리 내가 처음 봤던 그 세 권짜리 삼국지가 훨씬 더 실감났다.




1.

단 한줄의 승리학, 수많은 유명 인사들의 젊은이를 위한 한 마디 조언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을 쓴 분의 아이디어는 신선했다.
아니,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었겠지만 그걸 실행으로 옮긴 것이 대단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글이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았다.
마치 방학동안 밀린 일기를 마지막날 한꺼번에 모아서 쓴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젊은이들에게 하는 조언은 결국 어느정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내용이 중복되기도 했다. 이런 내용에 대해서 해설을 쓰려니, 자기 경험에 비춰서 쓰기도 하고 혹은 또 다른 일화를 인용해 글을 쓰기도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내용이 비슷비슷해져 버린 것이다.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지만, 책이 뒤로 갈 수록 지은이가 쓴 해설보다는 영어 편지 원문을 읽는데 더 집중하고 있는 날 발견하게 되었다.




2.

그 조언의 공통점들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정직하라, 봉사하라, 최선을 다하라,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라, 솔직하라, 포기하지 마라, 큰 꿈을 꿔라....'

모두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르겠다.
'뜬 구름 잡는 소리 하고있네.'

난 세상을 조금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
'너 하나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 절대 안되.'
수도 없이 많이 들어온 이야기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세계의 흐름에, 이 세상의 미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굳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위인전을 뒤적거릴 필요도 없다.
조지 부시, 빌 게이츠, 잭 웰치, 오프라 윈프리, 마이클 잭슨, 파바로티,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
작게 본다면 반기문 UN 사무총장, 노무현이나 이명박, 안철수나 이재웅, 박지성이나 차범근...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크든 작든, 그 방향이 옳은 것이었든 아니든, 이 세상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런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그런 인물들이 나와 같은 젊은이에게 한 조언이 바로 저런 것이었다.
'정직하라, 봉사하라, 최선을 다하라,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라, 솔직하라, 포기하지 마라, 큰 꿈을 꿔라....'
다들 뜬구름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말을, 단 한 줄 젊은이에게 하고싶은 조언으로 꼽고 있었다.



좋아하고 즐기는 일을 찾아라.
-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p34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십시오.
- 엘 고어, 미국 부통령, p166

노래하고, 춤추고, 사랑하며 배우십시오.
- 예후디 메뉴인, 바이올리니스트, p261

내 생각을 들려달라는 당신의 부탁은 기쁘고 고맙지만 아무래도 조언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게 편지를 보내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부디 21세기를 위한 조언이 성공하길 바랍니다.
- 잭 웰치, 제너럴 일렉트릭 회장, p51

당신이 듣고 싶어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나를 흥분시켰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삶을 돌아볼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는군요. 내 삶을 통틀어봤을 때 어렸을 적에 배운 기본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생활했을 때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 존 해네시, 스탠퍼드대학 총장, p306

첫째, 목표를 향해 전진할 때 당신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무엇을 하기로 선택했으면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 벤자민 넬슨, 네브래스카 주지사, p204

불가능한 꿈을 꾸십시오.
문명은 새로운 아이디어 덕분에 발전했습니다.
세계의 창조적인 천재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아이디어의 소유자였습니다. 따라서 나는 마음을 젊게 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근원이라고 추론하는 것입니다.
- 셀든 톨 호니그맨, 밀러 슈워츠 앤드 콘 법률사무소, p276

당신 자신을 믿으세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 티모시 머피, 하버드대학 풋볼팀 코치, p279




3.

한국계 이민 2세로 미 국무성 외교관이 된 정주리는 외교관이 되기 위한 마지막 구술시험에서 "당신은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지금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만약 한국의 국익과 미국의 국익이 충돌한다면 당신은 어느 나라 편에 서겠습니까?"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저는 한국이나 미국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정의의 편에 서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p236 

이보다 현명한 대답이 어디있을까? 훌륭한 대답이 어디있을까?
한 사람의 인격과 가치관, 생각의 깊이와 넓이, 시야, 그 모든 것을 보여주는 한 마디 대답이 아닌가!







2008/03/10 05:54 2008/03/10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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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미래 Revolutionary Wealth
Alvin Toffler, Heidi Toffler 작
김중웅 옮김
청림출판


내가 읽는 부분들에 대한 감상을 그때 그때 업데이트 해 나가기로 했다.
이 책은 그런 방식이 어울리는 책이다.
너무 방대한 분야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2.

드디어 다 읽었다.
폭넓은 범위에 걸친 다양한 글이 담겨 있었다.
결국에는 심층기반으로서의 '시간' '공간' '지식'을 토대로 한 분석이었지만, 이렇게 요약해버리기에는 그 안에 담겨져있는 수많은 메시지들이 너무 아쉽다.

사실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두마디로 이 책의 소감을 밝히기에는, 무엇보다 나의 능력이 아직은 모자란다.  

그나저나, 이젠 조금 편한 책을 한두권 읽고싶다. 소설책이나, 수필집, 아니 시집이 그립다.




0.

도대체 몇 개월 동안 이 책을 읽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1년이 넘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게을렀던 탓이 가장 클 것이다. 하지만 이런 600 페이지에 달하는 미래학 서적을 금방 읽어버리는 것은 분명 무리다.

그 많은 페이지 수 만큼이나 이 책에서 발췌하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그 모든걸 다 발췌할까, 아니면 그냥 간단히 발췌할 부분이 많았음에도 간단한 감상만으로 끝낸 '해변의 카프카' 포스트처럼 전체적인 감상만 적고 끝낼까를 잠시 고민했다.
결론은 '모두 다 적자.'
언젠가 분명, 발췌해둔 부분들을 꼭 필요로 할 때가 있을꺼란 생각도 든다.






5. 속도의 충돌 The Clash of Speeds


이제 변화의 속도에 초점을 맞춰 보자. 고속도로를 상상해 보라. 오토바이에 걸터앉은 경관이 도로쪽으로 속도측정기를 내밀고 있다. 도로에는 9대의 차가 있는데, 이들은 각각 미국의 주요 기관을 대변한다. 각 자동차는 그 기관이 실제 변화하는 속도에 상응하는 속도로 달린다. 가장 빠른 차부터 설명을 시작해 보자.

세상은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이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쉽게 찾기 힘들 것이다. '속도의 충돌'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장은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의 차이를 말한다.


선두와 느림보
시속 100마일: 기업이나 사업체

이들은 사회 다른 부문의 변혁을 주도한다.

시속 90마일: 시민단체
시민단체는 격렬하게 변하는 수천 개의 NGO(Non-governmental Grassroots Organizations, 비정부기구)들로 구성되어 급성장하고 있는 과보호 부문이다.
NGO가 주도하는 운동들은 작고 빠르고 탄력적인 단위로 구성되며, 네트워크로 조직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거대 기업과 정부기관을 능가할 수 있다.결과적으로 미국 사회의 다른 어떤 주요 조직들도 비지니스 세계와 시민단체 두 부문의 변화 속도에 미치지 못한다.

시속 60마일: 미국의 가족
수천 년 동안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전형적인 가족 형태는 몇 세대가 함께 모여 사는 대가족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가족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핵가족이 우세해졌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핵가족의 의미에 적합한 가정은 25퍼센트 미만이다. 사회 조직 중에서 가장 늦게 변화하는 유형에 속했던 가족체제가, 불과 수십 년만에 변형되고 있다.

시속 30마일: 노동조합
기업은 100마일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미국의 노동조합은 호박에 박힌 화석처럼 1930년대 대량생산 시대의 조직, 방법, 모델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사실 1955년 미국의 노동조합은 전체 노동력의 33퍼센트를 대변했지만 오늘날에는 12퍼센트의 노동자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코끼리가 완강하게 버틸 때
25마일: 정부 관료조직과 규제 기관
그들은 스스로 천천히 변화할 뿐만 아니라 빠르게 바뀌는 시장 조건에 반응하는 기업의 속도마저 떨어뜨린다.

10마일: 학교
미국의 학교들은 대량생산에 맞게 디자인되어 공장처럼 가동되고, 관료적으로 관리되며, 강력한 교원노조와 교사들의 투표권에 의지하는 정치인들로부터 보호받는다. 이들은 20세기 초의 경제체제를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들의 유일한 위안은 다른 나라의 학교들도 그보다 나을게 없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속도 경쟁을 벌이며 변화에 매진하는동안 공교육 체제는 독점의 특혜를 누리며 보호받고 있다.

5마일: 정부간국제기구(IGO, Inter-Governmental Organization)
모든 나라의 경제는 실질적으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세계적인 관리기구의 영향을 받는다. 유엔(UN, United Nations, 국제연합),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 이외에 국경을 넘나드는 활동의 규칙을 정하는 눈에 띄지 않는 다수의 실체까지 포함한 정부간국제기구들이 그것이다. WTO와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를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조직은 반세기 전인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구성되었다.
이들의 관료구조와 활동은 예전 그대로이다. 오늘날 국권은 새로운 세력의 도전을 받고 있고, 새로운 참여자와 문제가 국제 무대에 속속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3마일: 경제 부국의 정치조직
의회와 백악관에서부터 정당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정치조직들은 수많은 단체들의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그 요구들은 모두 느긋한 논쟁과 관료적인 나태함에나 걸맞는 체제에서 벗어나 빠른 반응을 기대한다.
현재의 정치 시스템은 지식 기반 경제의 엄청난 속도와 고도의 복잡성을 다룰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사회 경제적으로 정치 안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1마일: 법
흔히들 '법은 살아 있다'고 말하지만 정말 간신히 살아 있을 뿐이다.
진보된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저작권, 특허권, 사생활 보호와 같은 분야의 주요 법들도 한심하게 시대에 뒤처져 있다. 그야말로 지식 경제는 이런 법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법률에도 불구하고 생겨나고 있다. 이는 안정성도 부동성도 아니다.

p63 l4 ~ p71 l24 (부분발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마치 그 생각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래와 같은 말로 깔끔하게 마무리짓고 있다.


이처럼 다소 냉소적으로 언급한 속도 서열에 있어서 논쟁의 여지는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중심이 되는 사실은 분명히 있다. 그것은 가정, 회사, 산업, 국가 경제, 글로벌 시스템 등 그 모든 면에서 시간이라는 심층 기반과 부 창출 사이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전면적인 변혁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p72 l20 ~ l24






25. 제3의 직업 Our Third Job


은행의 ATM기를 보며 인원감축을 생각하지 못했던건 아니다. 하지만 고객을 위한 서비스라고 생각했던 것들, 혹은 새로운 사업 아이템 혹은 접근이라고 긍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은 놀라울 따름이다.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부분들이, 컴퓨터과학을 포함한 대부분의 IT산업에서 미래를 이끌어갈 기술로 집중하고 있는 분야라는 점은 날 혼란스럽게 만든다.


뷔페식당을 넘어서

제네럴 일렉트릭은 다른 가전제품 제조사와 마찬가지로 제품 정보를 요구하는 소비자들 때문에 애를 먹었다. 이 기업은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들의 문의를 해결하면 9,600만 달러의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기대했다. 한 통의 전화 문의에 답하는데 5달러가 들고 소비자가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는 데는 20센트 밖에 들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문의에 응하면 그만큼 노동력도 줄어든다. 그럼 그 직원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는 은행 창구 직원과 마찬가지로 유급 생산자에서 무급 프로슈머의 역할로 이동한 것이다.
빈큼없는 기업들은 노동을 외부로 돌리는 보다 영리한 방법들을 찾아 내고 있다. 만약 이를 주도하는 혁신적인 기업에게 상을 준다면 그것은 탐욕스러운 미국 대기업이 아니라 일본의 도톤보리(Dohton Bori) 레스토랑 체인이 받게 될 것이다. 도톤보리에서는 자신이 직접 가져다 먹는 단순한 뷔페 스타일을 넘어 고객이 직접 요리를 한다.
물론 이런 변화는 부분적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소비자로부터 환영받고 있다. 이론적으로 완전 경쟁이 서비스 가격을 떨어뜨려 간접적으로 소비자에게 보상한다는 말도 맞다. 노동비용을 외부로 돌려 절감한 비용이 언젠가는 소비자에게 돌아올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은 완전 경쟁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소비자가 기업들에게 공짜 점심을 주고 있다. 외부로 전가되는 노동은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다. 생산자에서 프로슈머로의 변환은 차세대 아웃소싱의 커다란 미개척 분야이다.

p250 l20 ~ p251 l14

'생산자에서 프로슈머로의 변환은 차세대 아웃소싱의 커다란 미개척 분야이다.' 라는 마지막 말은 두렵기까지 하다.


슈퍼마켓 일 떠넘기기

오늘날 미국과 다른 여러 지역의 슈퍼마켓 체인에 가면 소비자에게 휴대용 소형 기기를 통하여 구입하려는 통조림이나 상자를 스캔하여 신용카드로 결제하게 한다. 점원이 필요하지 않다.

p251 l24~ p252 l1

여기서 말하는 '휴대용 소형 기기'를 좀 더 발전시킨 것이 바로 유비쿼터스Ubiquitous 세상의 중심 기술 중 하나인 RFID 이다. 점원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다를바 없긴 하지만, RFID의 경우에는 소비자에게 전가된 노동이 다시 기계로 전가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분명히 존재하던 노동이 공중으로 증발해버린 것이다. 굳이 찾자면 RFID 칩셋을 연구하고 생산하기 위한 노동에서 찾아야겠지.
어쩌면 과학은 사람의 예측을 뛰어넘는 방향으로 이미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근래 새로운 모습은 소비자에서 프로슈머로의 전환을 용이하게 만드는 엄청나게 광범위한 사이버 구조이다. 이것만으로도 수많은 기업들이 맛있는 공짜 점심 경제(free lunch economy)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p252 l10 ~ l12

공짜 점심 경제 Free Lunch Economy, 주목할만한 단어다.


21세기 초 닷컴 붕괴로 인해 사라져 버린 전자상거래 업체들 가운데 생존자 하나가 우뚝 서 있다. 바로 무보수 프로슈머의 생산성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기업이다. 아마존닷컴(Amazon.com)의 소비자들은 서적과 음반 리뷰, 개인 의견, 선호하는 서적 리스트 등 콘텐츠를 사이트에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p252 l13 ~ l17

익숙하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건 다름 아닌 Web2.0의 개념이다.
Web2.0이 어디서 나왔던가? 21세기 초 닷컴 붕괴 속에서 살아남은 대표적인 기업들, 이를테면 구글, 야후, 아마존, 플리커, 마이스페이스와 같은 기업들의 공통점을 찾아내는데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참여'와 '공유', '개방'은 Web2.0의 가장 중요한 개념들이 아니던가?

Web2.0을 희망으로 생각했었다. 지금도 Web2.0이 그리고 있는 미래는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믿고있다. 하지만 똑같은 현상을 이렇게 다르게 해석해 놓은 것을 보니.. 난감하다. 전혀 다른 맥락에서 접근하고 있는데, 오히려 지금까지의 내 생각이 틀렸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36. 결론: 데카당스 이후 Coda : After Decadence


더 이상 육체적인 힘에 의존하지 않는 기업이 왜 남성적인 가치를 계속 반영하기를 기대하는가? 리처드 톰킨스(Richard Tomkins)는 <파이낸셜 타임즈>에 다음과 같이 조롱 섞인 글을 실었다. "오늘날 서구사회 대부분의 거대 기업들은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비지니스에서 사용하는 어휘들이 바뀌고 있다. 거칠고 퉁명스런 스타일의 카리스마 있는 대머리 사장의 이미지는 이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다가가기 쉽고, 상냥하며, 설득력 있고 친절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굳건한 위계와 엄격한 규칙으로 경영하던 명령과 통제는 융통성, 협조, 팀워크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는 이것을 경영의 여성화(feminizaton)로 설명했다. 톰킨스는 육체노동의 필요성이 감소되고 브랜드 같은 무형적인 것들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이런 가치관의 변동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는 요즘 많은 회사들이 팔고 있는 것은 브랜드로 전달하는 감성, 아이디어 그리고 믿음의 집합체라고 말한다. 궤변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말에는 중대한 핵심이 담겨 있다. 가치체계의 내부 폭발에 담긴 좀 더 불길한 시사점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p349 l4 ~ l18 

'세상이 바라는 건 여성이다.'
오래 전부터 이런 내용의 글을 포스팅 하려고 했었다.
리처드 톰킨스라는 사람이 말했다는 여성화(feminization), 책에는 오타가 난듯 하다. zation 이겠지? zaton 이 아니라. 나보다 좀 더 빨리 이걸 느낀 사람이 있었구나! 아니면, 내가 한참 늦은건가?
어찌 되었든 간에, 이건 중요한 변화다.
여성화. '남성'이라는 명사가 형용사화 되면서 나타내는 의미들이 왜 다들 그렇게 부정적이기만 한지, 또 반대로 '여성'이라는 명사가 형용사화 되면서 나타내는 의미들이 왜 그렇게 긍정적이기만 한지 억울하긴 하지만, 분명한건 이거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세상이 바라는 건 여성이다.






37. 자본주의의 위기 Capitalism's End Game



전체 자산 기반이 무형화될수록 결과적으로 자산 공급의 무한성이 점점 커져 비경쟁성이 증가한다. 앞서 말했듯이 지식 상품은 수백만 명이 동시에 이용해도 고갈되지 않는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음악을 공짜로 다운로드한다고 해서 그 음악이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 변화는 시스템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기존 기술의 존립기반이었던 저작권, 특허권, 상표권의 지적재산 보호조치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힘을 잃고 이에 따라 산업 전체가 공멸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p368



UCLA 로스쿨의 유진 볼로크(Eugene Volokh)교수는 "변호사들이 하는 일은 과거 모델을 계속해서 연장하려는 것이다"라고 꼬집는다. 그의 말에서 한 가지 분명한 점이 드러난다. 그것은 법적 공방이 누구의 승리로 끝나든지 자산의 무형화는 더욱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며, 자산 보호가 더욱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p369



이전부터 이런 생각을 가져왔다. 세상은 사람들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화해 갈 것이라고. 그리고 이미 변화해 가고 있다고. 사람들은 인문과학/사회과학의 학문적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물론 내가 그와 관련된 학문을 잘 아는건 아니다. 하지만 변화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개념 위에서 고려되어야만 하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심층기반처럼. 지금까지의 인문/사회과학이 예측하는 미래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변호사들이 하는 일은 과거의 모델을 계속해서 연장해 나가는 것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다. 대표적으로 사회학이 그렇고, 경제학이 그렇다. 법도 이미 한참 뒤쳐져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과학과 기술이 있다.
르네상스시대, 과학혁명이 일어나던 바로 그 때, 과학은 종교와 충돌하며 종교를 변화시켜 나갔다. 그 당시의 종교는 사회 바로 그 자체였다. 즉, 과학은 사실 사회를 변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지식이 공간이라는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 짐으로써 나타날 미래 사회는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건, 새로운 사회의 변화된 모습은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이미 우리 옆에 다가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38. 자본의 전환 Converting Capital



Q. 인류 역사상 최악의 경제 대공황 속에서 실직한 세일즈맨이 백만장자가 되는 방법은 무엇인가?
A.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부자가 되는 법을 알려 주는 것이다. 모노폴리(Monopoly)라는 보드게임의 게임 머니로 말이다.
p371
 

산업화 시대에 전 세계에서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된 미국은 소수에게 자본이 집중되어 있었다. 론 처나우(Ron Chernow)는 저서 <은행가의 죽음 The Death of the Banker>에서 "1920년대 이전 월 스트리트는 개인 소액 투자자들을 하찮게 취급했다" 라고 지적한다.
p372
 

비지니스 전문가인 제임스 플래니건(James Flanigan)은 "오늘날 미국의 주인은 연금기금, 퇴직기금, 개인 퇴직계정 등을 통해 5조 달러가 넘는 기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약 1억 명의 미국인이다. 미국 근로자들은 전체 미국 상장 기업의 주식 중 6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는 전체 근로자의 약 70%가 보유하고 있는 주택 자산가치와 건강, 생명, 손해보험 등 보험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 추가 자산을 제외하고도 1인당 평균 5만 달러에 이르는 규모이다.
p372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의 근로자들은 주식을 비롯한 다양한 자산의 분배를 통해 주인(owner)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이는 사회민주주의체제의 서유럽 국가를 포함해 주요 자본주의 국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것이다. 후진국의 국민들에게는 이런 수치가 상상을 초워랗는 것이다.
중국 전체 인구의 10%가 비국영 기업의 공개 상장 주식을 보유한다면 공산당은 마르크스가 말한 생산 수단의 소유권을 노동 계급에게 이전하는 데 성공했다고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로서는 그 수치가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p373
 


자본주의의 한계와 끝을 너무나 쉽게 말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이 우리 주위에는 널려 있다.
그런 사람들 중에 이런 자료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그런 사람들 중에는 여러 서적이나 기타 다른 매체들을 통해 꽤 많은 자료를 가진 사람도 간혹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서적을 쓰는 한 사람은 자본주의의 끝에 다다른 이 시점에서, 자본주의의 순기능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모두가 그러기에 나 역시, 자본주의를 색안경을 쓰고 들여다보고 있지는 않은지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동시에 묻고싶다.






39. 시장의 부재 Impossible Markets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대량생산이 가진 비용적 매력은 줄어들고 있다. 대량맞춤이라는 중간 단계가 사라지기 때문에 추가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진정한 개인화(personalization)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결국 시장은 더욱 폭이 좁고 수명이 짧은 지식 집약적 화폐시장으로 세분화될 것이다. 탈대중화는 집단적 획일성보다 개성을 선호하는 문화나 중산층이 있는 곳이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확산될 것이다.
p384



언제쯤 나오려나, 맞춤형 핸드폰은?
삼성 애니콜 아이디어 공모전이 있으면 보내볼텐데 말이다.
난 핸드폰에 카메라도 mp3도 필요없다구.





 
41. 빈곤의 미래 The Old Future of Poverty


산업시대의 활동과 노하우의 거대한 변화로 인해 전 세계 수많은 극빈자들이 절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배부른 사람들은 도시의 슬럼가로 흘러들어 궁핍한 삶을 이어가는 것이 무슨 발전이냐고 반문하겠지만 가뭄과 기아, 질병 때문에 고향을 등졌던 수많은 아시아인에게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나은 일이었다.
지식 경제체제로 전환한 나라들이 자국 제조업의 일부분을 아시아나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농업 국가로 옮기는 과정은 여러 가지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수혜국에서는 평균 수명의 증가, 유아 사망률의 전반적인 하락, 빈곤 퇴치의 핵심 요소인 인구 성장률 둔화와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1960~1999년 사이 전 세계 일인당 식량 생산량이 25퍼센트 가량 증가했고, 영양 부족을 가늠하는 기준인 하루 2,100칼로리 미만을 섭취하는 사람의 수도 75퍼센트나 감소했다. 비슷한 기간 동안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평균 실질 임금이 무려 400퍼센트나 증가했다.

p419
 

'배부른 사람들은 도시의 슬럼가로 흘러들어 궁핍한 삶을 이어가는 것이 무슨 발전이냐고 반문하겠지만 가뭄과 기아, 질병 때문에 고향을 등졌던 수많은 아시아인에게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나은 일이었다.'

더욱 심화되는 빈부격차를 이야기함에 있어서도, 어쩌면 이와 같은 논리에 답할 수 있는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할 것 같다.
'좀 더 나은 내가, 나보다 못한 그들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해 주어야 한다'는 오만한 사명감은 '당신들은 지금 당장 배 불러지는거에 넘어가선 안되'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나, 사실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당장 굶지않는 것'일테니.
저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내가 '배부른 사람'이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니, 착각하면 안된다. 나는 진보의 입장에서 보수를 향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진보라 소리치는 당신들에게 묻고 싶은거다.





43. 빈곤 해소 Cracking Poverty's Core


지금까지 유전자 변형 농작물을 키우는 나라는 6개국에 불과했고, 그 품목도 서구 사회에서 인기가 높고 수익성이 높은 콩, 캐놀라, 옥수수, 면화로만 국한되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경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도 생명공학부(Indian Department of Biotechnology)는 가까운 미래에 유전자 이식을 통해 종을 개량한 양배추, 토마토, 감자를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 인도 농무부 장관인 라즈나쓰 싱(Rajnath Singh)은 "인도는 옥수수, 카사바, 파파야 등 후진국에서 주로 소비하는 12개 주요 농작물에 대한 유전자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p434
 

왜 후진국에서 주로 소비하는 농작물인가.
상품으로써의 가치를 고려한다면 오히려 선진국에서 소비하는 것을 연구해야 하지 않는가?
혹시, 선진국에서는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상품성이 없고, 당장 배고픈 후진국에는 그런 것을 고려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면, 이건 인간 마루타가 아니고 무엇인가.





45. 일본이 넘어야 할 고비 Japan's Next Bamboo Ring

프로젝트 수행에 실패해 수백만 달러의 손해를 입힌 한 간부를 해고하겠냐는 질문에 대해 IBM의 전 회장인 토마스 왓슨의 대답은 이런 내용을 잘 보여 준다. 왓슨은 "그를 해고한다고? 맙소사. 안돼. 나는 방금 그의 수업료를 지불했단 말이야" 라고 말했다.

p478
 
정말 부러운 문화다. 이 말밖엔.





49. 미국의 외부 정세 Outside America

특히 흥미로운 사례는 <스파이더맨Ppider-Man>의 경우이다. 초등력자인 스파이더맨을 주인공으로 한 미국의 만화책이 인도에서 번역 출간됐을 때, 인도 독자들의 종교적 민감성을 수용해 등장 인물과 무대 배경이 바뀌었다. 주인공은 뉴욕의 피터 파커에서 뭄바이의 파비트르 프라브 하카르로 대체되었다. 더 중요한 변화는 파비트르가 어떻게 초능력을 지니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미국에서는 파커의 능력이 방사선에 의해 강화된 것으로 설정된 반면, 인도에서는 파비트르가 종교적 수단에 의해 초능력을 얻는다. <뉴스위크>는 "주인공은 자신의 초능력을 요가로부터 받는데 요기는 의식을 통해 초능력을 부여한다. 그리고 악당은 힌두교에서 말하는 악마이다"라고 보도했다.

p535
 

이러한 융통성은 충분히 두렵다.




에필로그. 프롤로그는 이미 과거이다

논리를 피력함에 있어서 비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현명한 척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물론 비관적인 관점을 가질 만한 이유가 세상에 널려 있기는 하지만 지속적인 비관주의는 그리 권장하고 싶지 않은 사고방식이다.
-p553
 

현명한 척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 비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것.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2007/12/19 04:43 2007/12/19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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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FID에 대해서 Tracked from P.I.E.R.C.E.의 까칠한 세상 2007/08/19 23:27 Delete

    이번엔 전공 관련 내용입니다. 친구 블로그에 흥미로운 내용이 올라왔습니다. RFID 관련된 내용이며,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한 번 써봅니다. 1. RFID란? RFID는 Radio Frequency ID의 ..

  2. "부의 미래"를 읽는 다는 것 Tracked from Dean's tagging of life 2nd 2007/10/16 17:55 Delete

    앨빈 토플러의 미래학 시리즈는 어쩌면 아이러닉하게 이미 그 이름과 달리 고전이 되었다. 제3의 물결, 미래의 충격 등이 그 반열에 들어 있을 것이다. 작년 가을 '부의 미래'를 처음 대한 순간..

블루, 색의 역사 Bleu
Michel Pastoureau 저
고봉만 김연실 옮김
한길아트





1.

책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재미있는 소설책이 있는가 하면 요즘에는 자기개발서가 인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책은 참 오랜만이다. 여기 나오는 내용 전체가, 나는 전혀 모르던 것이었다. 마치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우주는 왜'를 읽었던 기분이랄까. 한줄 한줄이 전부 지식이었다. 내가 모르던 것들- 내가 모르던 것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내가 약간이나마 알고 있던 것에 대한 다른 시각으로의 접근. 여기 감상문에 아무런 인용도 없는 것은 인용할 부분이 없어서가 아니라 모든 문장이 나에게는 새로웠기에 모두 인용할 수 없어서이다.




2.

글의 내용과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이지만 글의 중간중간,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느껴지던 '수많은 가능성에 대한 의심'은 뭐랄까, 참 마음에 들었다. 추측을 추측으로 인정하는 모습, 더 자세히 말하면 근거가 뒷받침된 자신의 의견과 그렇지 못한 아직 논리적으로 부족한, 혹은 조사가 충분치 못했던 추측을 확실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구분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자신의 이번 저서에서의 한계를 인정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긍정적인 느낌이었다.




3.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블루를 선호하는 취향은 이 색이 특별한 충동을 일으키거나 아니면 상징적으로 강한 의미를 지니고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파랑이 다른 색, 특히 빨강, 초록, 흰색, 검정보다 상징성이 '덜 강한' 색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추측을 입증해 주는 것은 여론 조사에서 가장 덜 인용되고 가장 덜 미움을 받는 색이 파란 색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 p238



2007/09/25 23:08 2007/09/25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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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작
문학동네


8:35 pm 이야기를 듣는 것도 위로가 될 수 있겠지?
8:59 pm 일단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위로가 되니까.
9:01 pm 음 난 그럼 상대를 잘 고른거같아 끊임없이 나한테이야기를 해줬거든ㅎ
9:02 pm 현재?
9:03 pm 서점. 나란놈은 아직 그렇게 멋진 놈은 못되네ㅎ
9:05 pm 뭐가. 픕. 책에서 이야기 듣고 있는 거야?
9:06 pm 박민규 이사람 이야기 잘하네 -
9:06 pm 픕. 책 낼 정도면 그런 거지.
9:07 pm 미친놈같아 완전ㅋㅋ 사람들이 미친놈이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같아
9:08 pm 큭큭. 그러니까 책을 내겠지.
9:10 pm 이 책 다 읽고싶은데 이정도만 읽어야겠어. 나랑 이만큼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
9:11 pm 미친 사람이라고 할 정도래매. 큭큭.
9:13 pm 응, 미친놈이야ㅋ 아, 좀 걱정된다 이사람. 자살할까봐.
9:46 pm 오빠가 그렇구만.
9:50 pm 아니, 이 사람이 그래. 묻고싶다 박민규란 사람한테. 왜 사느냐고.
9:57 pm 그래서 말해줬어? 아니면 그냥 묻기만 해?
10:02 pm 끝까지 안읽어서 모르겠어. 아직 밖이야?
2007/09/12 15:22 2007/09/1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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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풀 In the Pool
오쿠다 히데오 작
양억관 옮김
도서출판 은행나무


1.


[프렌즈]

다시 주사 시간이 되었다. 마유미 씨는 여전히 무뚝뚝하다. 바늘을 난폭하게 꽂는다. 날이 갈수록 더 아픈 것 같다.
"간호사 누나는 친구 있어요?"
팔을 문지르면서 물어보았다.
마유미 씨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없어."
이라부와 마찬가지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투다.
그러나 마유미 씨는 이라부 씨와는 다르다. 젊은 여자가 아닌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 나이다.
"외롭지 않으세요?"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외롭지."
간발의 틈도 없이 대답했다.
"그런데 왜?"
"혼자가 좋아. 편하기도 하고."
마유미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더니, 유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너, 진짜 친구, 없지?"
"아녜요!"
눈을 까뒤집고 입을 비죽 내밀었다.
"얼마나 많은데요. 이번 토요일에도 벌써 약속이 되어 있다구요."
"그러니? 다행이네."
흥, 하고 마유미 씨는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라부도 그렇고 마유미도 그렇고, 친구가 없는데도 어떻게 저리 태평할 수 있을까. '없어'라는 말을 어떻게 그리도 당당하게 할 수 있을까.

p242 l19 ~ p243 l22



2.

'공중그네'를 읽고 나서처럼 현대인이 어쩌고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2탄'이라는 표현 답게 비슷한 구성에 비슷한 내용이었다. 비슷한 것을 느낀 것도 어쩌면 당연하겠지. 유쾌했다.



3.

얼마 전에 후배로부터 '생각을 너무 깊게 하려고 하는게 단점'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예전에도 친한 친구로부터 그런 충고를 들은 적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이런 내가 불편할 때도 있으니까. 게다가 정말 생각이 깊으면 다행인데, 혼자 생각이 깊은 '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라부라면 이런 나에게 어떤 처방을 내렸을까?
풋.. 미안하지만, 난 40살쯤 된 기름기 번지르하고 지저분한 마마보이 돼지 의사는 노땡큐다. 옆에 마유미라는 간호사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라부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으- 싫어.


2007/08/14 07:15 2007/08/1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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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의 다락방
신희영 글, 그림
대원디지털엔터테인먼트
제 초판 1쇄 - 2006년 7월 12일



마피의 다락방.
인터넷에서 웹툰을 즐겨 보는데, 그러다 우연히 보게된 만화. 길지도 않고 99회 분량의 4컷 만화.
만화가 너무 예쁘고 슬퍼서, 결국 책까지 사게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책으로 출판된 마피의 다락방은 웹툰에서 그리지 않았던 다른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내가 원하던건 웹툰, 그거였는데..

여기서는 책에 있는 이야기, 그리고 웹툰에서 봤던 이야기, 둘 다 하려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웹툰이 좀 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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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동화같은 그림이 담고있는 전율이 느껴지는 작가의 상상력 '전율이 느껴진다'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동화같은 그림이지만, 그 말 이외에는 다른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보다 좋았던건, 지친 날 따뜻하게 감싸는 느낌이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안긴듯한, 그런 느낌.



2.

누군가를 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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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잊는 법...
나도 이것과 똑같은 방법을 쓴다.
나만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정작 누군가 나와 같은 방법을 쓴다는 사람을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저 방법이 좋은건,
누군가를 잊을 수 있고,
하지만 동시에 영원히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잊는 것만큼 아픈 일이 세상에 어디있다고..
누군가에게 잊혀지는 것만큼 슬픈 일이 세상에 어디있다고..



3.

크리스마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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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
나도 천문대에 가보고 싶다.
둘이서, 반짝이는 하늘의 별을 보고싶다.



4.

아, 찾았다. 프리지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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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여기 있었구나!
프리지아, 프리지아.
:D



5.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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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둘, 얼마 되지 않는 세월이긴 하지만 친구를 잃어본 경험 정도는 해봤을 봄직한 세월.
다 비슷하게 느끼고, 다 비슷하게 생각하는구나...
안녕,
내 젊은 시절에 너 같은 친구가 있었다는 걸
고맙게 생각해
눈물이 난다.



6.

이번엔 여기서 어떻게든 해결을 볼래.

펼쳐보기



이런 한 컷, 한 컷이 보는 이를 웃게한다.
힘을 준다.

그래, 어떻게든 해 볼래.
일이 생길 때마다 숨었다간 바보가 되어버릴지도 몰라.


 

7.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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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 놈의 벽은 왜 이렇게 안 깨지는거야.
제발.. 제발! 이렇게 눈물나게 원하잖아.



8.

춥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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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렇게 마음에 위안이 된다.
힘들고 지칠 때, 누군가가 날 감싸 주는 느낌을 받게된다.
내가 지금 많이 힘든가보다.






2007/05/21 23:19 2007/05/21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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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피의 다락방 Tracked from so much to tell you 2007/06/05 16:33 Delete

    마피의 다락방 생일 선물로 ' 마피의 다락방 ' 이라는 책을 선물받았다. 만화책(?)이라 받자마자 집에 와서 당장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서 당황스러울 정도로 공감가는 내용이 많아서 도대체 ..

신곡 La Divina Commedia
단테 Alighieri Dante 작, 구스타브 도레 Gustave Dore 그림
다니구치 에리야 엮음, 양억관 옮김
황금부엉이
제 초판 3쇄 - 2005년 3월 5일



1.

희망이란, 사랑이란, 평화란, 믿음이란 무엇인가. 갑작스런 그런 질문에 대해 나는 나도 모르게, 메아리처럼 대답했다. 한 순간의 주저도 없었다. 벌은 아무리 멀리 날아가 꽃 속에서 꿀을 빨다가도,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돌아가는 길을 요리조리 따지지 않고도 그냥 제 집으로 돌아간다. 철새는 수만 리 먼 하늘을 날아 고향을 찾아가고, 물을 거슬러 오르면서도 물고기는 길을 잃지 않는다. 아마도 인간에게 사랑이란, 그런 원초의 힘일 것이다. 내 속의 뜨거운 뭔가가, 저편에서 하얗게 빛나는 장미와 호응한다. 춤을 추듯 거침없이 빛의 사다리를 오르면서, 나는 완벽하게 자유로웠다.

p290

아마도 인간에게 사랑이란, 그런 원초의 힘일 것이다... 나는 완벽하게 자유로웠다.



2.

화살처럼 눈을 찌르는 빛, 비처럼 내려 퍼부으며, 모래알처럼 눈을 때리는 빛의 알갱이. 빛이 하나의 의지라면, 의지 또한 하나의 확실한 존재라는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쳤다. 

해변에서 모래를 퍼올리듯, 두 손을 모아 빛을 받으려는 나. 두 손 가득한 빛의 알갱이가 손가락 사이로 떨어져 내린다. 떨어져 내리는 모든 빛은 하늘나라로 흩어지면서 점점 더 강렬해지더니 이윽고 무수한 별이 된다. 나는 마치 빛의 강을 따라 상류로 오르는 물고기 같았다. 물고기는 물살을 가르고, 새는 대기를 가른다. 빛 속을 헤엄치는 기술 또한..., 그순간, 나는 자신의 눈이 벌써 형태를 찾아 헤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일종의 힘이었다. 모든 형태에서 자유로운 힘.

빛은 모래가 되기도 하고 별이 되기도 하고 새가 되기도 했다. 크고 작음도 없이 시간의 자유 속에서 마구 변해가는 그것은, 그러나 무엇보다도 확실한 존재였다.

인간의 죄와 지옥에 대한 묘사에 집중했던 지옥편에 비해, 천국편은 천국의 '느낌'을 나타내는데 주력했다는 느낌이다. '찬란함'이라는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을까, 천국편의 후반부는 마치 내가 베아트리체, 단테와 함께 직접 천국을 느끼고 있는듯한 환상에 사로잡히게 한다.



3.

지혜는 빛
사랑은 빛
빛은 모든 것!

있을 수 있는 일을
이룰 수 있는 일을
구해야 할 일을
당신과 함께


나는 사랑

나는 빛


단테는 지옥에서는 연옥을 베르길리우스, 천국에서는 베아트리체의 인도를 받게 된다.
천국편, 그리고 이 책 전체에서도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볼 수 있는 지혜, 사랑, 빛.
여기서 지혜는 지옥과 연옥을 무사히 인도하고, 단테에게 여러 가르침을 준 베르길리우스,
사랑은 그를 천국, 빛의 한가운데로 인도한 베아트리체와 연결지을수 있을 듯 하다.



베아트리체가 죽기 전, 젊은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천국편을 읽는 동안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들이 각각 가슴 속에 가지고 있던 빛의 구체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함께 찬란해지고 있었다.




2006/06/20 18:26 2006/06/2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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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 작
이영미 옮김
은행나무
제 1판 19쇄 - 2006년 3월 28일



1.

즐거운 책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해서, 가볍게 마지막 장까지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 남의 이야기가 아닌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이 책은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었기에 읽는 내내 마음이 밝을 수 있었다.


날카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야쿠자,
점프를 못하는 공중그네 곡예사,
장인의 가발을 벗겨버리고 싶은 사위,
1루 송구를 할 수 없는 3루수,
실패해 본 적이 없는 여류작가.


모두 웃긴 이야기들이었지만 남의 이야기 같지는 않았다.

약한 부분을 감추려 괜히 뻗대는 것,
남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하고 경계하는 것,
정해진 규율과 다른사람의 시선에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
상대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충격받고, 실패하고 싶지 않아 다른사람에게 날카로워지고 불안해 하는 것,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아주 평범한 모습이니까.



좀 더 자유로워지자.
좀 더 편하게 생각하고,
좀 더 솔직해지자.

이런 작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2006/05/21 18:25 2006/05/2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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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이야기 Don't Eat the Marchmallow...Yet!
호아킴 데 포사다 Joachim de Posada, 엘런 싱어 Ellen Singer 작
정지영 옮김
한국경제신문
제 1판 70쇄 - 2006년 3월 25일


이 책이 어떻고를 떠나서..
말도안되게, 책을 잡자마자 그대로 끝까지 읽어버렸다.
읽기에 큰 부담이 없는 책이기도 했고 길이도 짧긴 했지만,
무엇보다 보통책-전공책이 아닌 책을 통틀어 이르는 말.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던 듯 하다.
책을 읽는건, 역시 행복한 일이다.




1.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작은 성취에 만족하지 말고,
항상 좀 더 큰 목표를 향해서,

이 책의 주제는 저것인 듯 하다.

끊임없는 도전의식이라..
좋지, 좋긴 한데...
방향이 좀 불명확하다, 이 책에서는...



2.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성공의 기준을 돈으로 보고있는 책이다.'
철저한 미국책이라는 느낌이랄까, (생각해보면 '성공하는 방법' 에 대한 책은, 모두 미국책인듯 하다.)

자아의 성취, 꿈의 실현 - 그런 약간은 이상적인 것들, 그런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돈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성공의 잣대를 결정 짓는다는건 어쩌면 그럴듯한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대한민국 국민의 보편적 감수성으로 볼 때, 이 책을 곧 '성공의 비결'로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을듯 하다.
여기서 말하는 비결이라는 것은 분명 모두가, 혹은 개개인이 생각하는 성공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인 것 같기는 하지만, 최소한 이 책에서는 그 성공을 돈으로만 한정짓고 있다.
말 참 어렵게 쓰는군...


돈이라...



2006/05/19 18:24 2006/05/1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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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시멜로 이야기 Tracked from 시니사군의 놀이터 2007/02/20 14:05 Delete

    마시멜로 이야기/★☆☆☆☆ 나는 말이지, 처세서, 혹은 자기계발서를 눈물나게 싫어한다. 서점에서 이런 책들이 팔리고 있으면, 책장 사이를 살짝 열어서 가래라도 뱉은 후 덮어 놓아 이 책..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Veronika, Decides to Die
Paulo Coelho
이상해 옮김
문학동네
개정판 17쇄 - 2005년 12월 31일




1.

"그래도 숙모가 무언가에 저항하는 모습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남편에게 여자가 생긴 걸 안 바로 그날이었죠. 난리가 났었어요. 살이 몇 킬로나 빠지고, 유리를 닥치는 대로 박살내고. 몇 주 내내 어찌나 소리를 질러댔던지 이웃들이 잠을 다 못 잘 지경이었어요. 이상하게 들리지는 몰라도, 난 그래도 그 시기가 숙모에게는 일생 중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믿어요. 그때 숙모는 무언가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거든요. 숙모는 당신이 살아 있다는 걸, 당신도 앞에 놓인 도전에 격렬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걸 느꼈던 거죠."

p26 l15 ~ p27 l3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정말 부럽다.

머릿속에서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느낌이지만, 글로 그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기란 정말 어렵다.
막 답답해진다. 내 생각이 이런게 아닌데, 내 느낌은 이것보다 훨씬 강렬하고 선명했는데.
그래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부럽다. 그 사람들은 최소한 나보다는 좀 덜 답답해 할 것 같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나보다 수천배의 고민과 노력을 한 끝에 그런 문장 하나를 써 낸다는것은 알고 있지만-
가끔 이런 철없는 생각이 문득 든다는 사실에 난 웃음짓기도 한다.


국어사전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알고싶지도 않다. 국어사전에 정의된 '행복'이란 단어의 뜻이, 진정 행복을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무언가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것.
앞에 놓인 도전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
미처 지금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여유도 없이.
그 말은 곧,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여유도 없이.



2.

"영하 오 도가 넘는 날씨에, 등이 깊게 팬 붉은 야회복을 입고 초점 잃은 흐릿한 눈을 한 채 류블랴나의 거리를 헤매는 한 여자를 본 적이 있지. 술에 취했구나 싶어서 도와주려 했지만, 그 여자는 내 외투를 거절했어.
아마도 그녀의 세계가 여름이었거나, 그녀의 몸이 그녀를 기다리는 누군가에 대한 욕망으로 뜨거워져 있었을 거야. 그 누군가 그녀의 망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대로 살고 죽을 권리가 있는 거야. 안 그래?"

p53 l16 ~ p54 l3

그렇게 무서우리만큼 순수한 열정으로,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혹은 누군가에게 다가가며 살아가고 있는가?



3.

'나 자신을 다스려야 해. 난 한번 결심하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사람이야.'
그랬다. 살아오는 동안, 그녀는 많은 일을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밀고 나갔다. 하지만 모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사과만 하면 간단히 끝날 불화를 계속 끈다거나, 관계가 밋밋하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남자에게 끝내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다거나 하는. 그녀는 가장 쉬운 일에서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강하며 무관심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허약했고, 학업이나 운동시합에서 결코 두드러진 성적을 거둔 적이 없으며, 가정을 화목하게 가꾸지도 못했다.
그녀는 자잘한 결점들과 싸우느라 지쳐 정작 중요한 문제에서는 쉽게 무너졌다. 독립심 강한 여자처럼 행동했지만, 내심으로는 같이 지낼 사람을 열렬히 갈구했다. 그녀가 나타나면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지만, 그녀는 대개 홀로 밤을 보냈다. 수도원에서,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그녀는 모든 친구들에게 자신이 선망의 모델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의 이미지에 부합하려 애쓰느라 모든 에너지를 소비했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녀에게는 자기 자신 -누구나 그렇듯, 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 이 되는 데 써야 할 힘이 더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타인들, 그들을 이해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지! 그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고, 그들 자신이 만든 방어막 속에 갇혀 그녀처럼 모든 것에 무관심했다. 좀더 삶에 개방적인 누군가를 만나면, 그들은 그 사람을 즉각 거부하거나, 열등하고 '순진한' 사람으로 매도하여 상처를 입혔다.
좋다, 그녀가 고집과 결단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치자. 그런 그녀가 지금 도달한 곳은? 공허. 완전한 고독. 빌레트. 죽음의 앙티샹브르.

p98 l3 ~ p99 l11

발췌를 위해 글을 다시 읽으며 옮기면서, 차마 글을 읽던 호흡을 멈출 수 없어 한페이지가 넘도록 글을 계속 읽으며 타이핑 해 버렸다. 호흡이 끝날 때까지.
내가 아직 남의 글을 평가할 능력이 되는건 아니지만, 파울로 코엘료라는 작가는 한 단락(한 호흡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듯 하다.)을 완성해 내는 능력은 최고인 듯 하다. 한 번 그 부분을 읽기 시작하면 그 글의 호흡이 한번 끝날 때까지 죽- 읽어진다. 단 몇 초 동안 수십줄의 글을 읽어버리게 된다. 마치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고있는 것만 같은 부드러운 흐름(그 내용이 부드러운지 격렬한지를 떠나서-)이 느껴진다.
그에비해 그런 단락들을 구성하는 능력은 조금 아쉽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그의 책 중에서 책 전체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듯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건 단지 그의 '단락을 완성하는 문장력에 비해' 구성력이 좀 아쉽단 것일 뿐, 그가 쓰는 글의 호흡은 진정 경이롭다.


사과만 하면 간단히 끝날 불화를 계속 끈다거나, 관계가 밋밋하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남자에게 끝내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다거나 하는. 그녀는 가장 쉬운 일에서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강하며 무관심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 가장 쉬운 일에서만...

그녀는 모든 친구들에게 자신이 선망의 모델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의 이미지에 부합하려 애쓰느라 모든 에너지를 소비했다.

되돌이켜 보면,
내가 하고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내 이미지로는 이렇게 해야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했던 경험이 실제로 많다.

타인들, 그들을 이해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지! 그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고, 그들 자신이 만든 방어막 속에 갇혀 그녀처럼 모든 것에 무관심했다. 좀더 삶에 개방적인 누군가를 만나면, 그들은 그 사람을 즉각 거부하거나, 열등하고 '순진한' 사람으로 매도하여 상처를 입혔다.

바로 이 세상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내가 그렇지 않다고 애써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당신 역시 그렇다고, 난 확신할 수 있다.


"...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짓거리를 하는 자신을 정상이라고 믿지. ..."

p55 l19

"... 그녀는 옛 모습을 되찾아야 했다. 빈정거리는 태도로, 그들은 별볼일없는 인간들이므로,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행동해야 했다. ..."

p66 l11 ~ l12

난 내가 원하지 않는 무언가를, '정상'이기 위하여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야할 이유도 없고, 어쩌면 해서는 안될 일조차,
주위에서 하기 때문에, 혹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순진한' 사람으로 보여 상처받을까 무서워 하고 있는 것은 없을까.
혹은, 그런 '순진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가.




4.

... 그랬다. 그녀가 삶이 자연스레 자연스레 강요한 것을 결국 받아들이고 만 것은 그녀 자신이 모든 것을 '그딴 바보짓'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 그녀는 뭔가를 선택하기에는 아직 때가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었을 때는, 뭔가를 바꾸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고 체념했다. 지금까지 무엇 하느라 내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 거지? 그것도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게 하느라고. ...

p67 l13 ~ l19

난 지금 오춘기다.
몸과 정신 성장이 급격히 몰아치는 사춘기를 지냈지만,
아직 사회란 것에 대해 세상이란 것을 하나씩 느껴가는 나이.
('세상을 배운다'라고 썼다가 지웠다. 세상을 배우고 싶지는 않다. 세상은 배워야 할 점도 있지만, 분명 배워서는 안될, 바꿔야 할 점도 있기에.)
어른으로서의 자유를 인정받는 대신, 그 책임 역시 강요당하는 나이.

선택을 해야 할 나이인 동시에, 뭔가를 바꿀 수 있는 나이이다.
정말 중요한 시기이다. 소중한 시간이다.



5.

'난 사랑을 위해 충분히 투쟁했던 걸까? 내가 기대했던 삶을 사는 대신 그의 정부로 남아 있어야 했던 건 아닐까? 나는 과연 내 민족만큼 내 첫사랑을 위해서도 열렬히 투쟁했던 걸까?' 

p87 l16 ~ l19

'절대 마음을 전부 주어서는 안된다. 돌아오는 것은 상처 뿐일 것이다.'
연역적 추리가 아닌 귀납적 추리. 단 몇 번의 경험적 근거에 의지한 결론.
마치 진리처럼 포장된, 현대인들의 연약한 내면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어구.



6.

한순간,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엄마에 대해서도 증오심을 느꼈다. 엄마는 딸이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희생했고, 자신은 몇십 년째 입는 낡은 옷 한 벌로 만족하면서, 딸만은 공주처럼 차려입도록, 유명 상표의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을 수 있도록 밤낮으로 일한 완벽한 주부였다.
'어떻게 나는 내게 사랑만을 준 누군가를 증오할 수 있는 거지?'
베로니카는 혼란스러웠다. 들끓는 감정들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었다. 증오는 고삐 풀린 말처럼 날뛰었다. 그녀는 이미 자기 안에 있는 지옥의 문들을 활짝 열어젖혀놓았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진 사랑을 증오했다. 그 사랑은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자연법칙에 반하는 부조리하고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그 사랑은 그녀를 죄책감으로 가득 채워놓았고, 그녀가 꿈꾸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그 사랑의 기대만큼은 충족시키고픈 욕망을 그녀에게 불어넣었다. 그 사랑은, 언젠가는 그녀도 삶의 험난함과 세상의 추악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것들에 맞서야만 하리라는 필연적인 현실을 외면한 채, 긴 세월 동안 그것들을 그녀에게 감추려 들었다.

p101 l1 ~ l20

삶의 험난함과 세상의 추악함 속에서도, 너만은 행복하고 따뜻한 세상 속에서만 있게 하고픈 욕망이겠지...



7.

에뒤아르는 이런 종류의 토론에는 신물이 났다. 바깥 세상에서는 그들이 아무리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도 우스꽝스럽게 여길게 뻔하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정신병원에 틀어박혀, 아무런 위험도 무릅쓰지 않은 채 세상을 구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사람들 각자가 모든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진실만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수다로 세월을 보냈다. 생각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은 채. 좋건 나쁘건, 생각은 그것을 실천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에만 존재하는 것인데에도.

p213 l2 ~ l10

전혀 그런 색체는 느낄 수 없는 책이지만, 이 부분만을 이렇게 따로 떼어놓고 보니 뭔가 느낌이 다르다.
"록 밴드를 결성하고 연극단 활동에 참여했으며, '급진적인 성향을 띈 만화 잡지'를 창간, 브라질 군사정권에 의해 두 차례 수감되고 고문당했다."
는, 책 겉 커버에 있던 코엘료의 소개가 다시 오버랩될 수 밖에 없었다.
코엘료는 글을 통해 영혼을 노래하면서도, 분명한 자기 신념과 세상의 문제점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가진 사람이 분명하다.



8.

괜찮은 책이었다. 다만, 마지막 반전이라 해야할까? 마무리가 아쉽다.
앞으로 베로니카가 행복하게 살 것이란 확신을 주었고,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던 것을 정말 대놓고 독자에게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는 효과는 있었지만...
한 사람이 삶, 죽음, 인생에 대해 목숨을 걸고 생각했던 것이 또다른 한 사람의 장난에 의해 의도된 것이었단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아직 소설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든다.)




2006/04/23 18:24 2006/04/2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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