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 2010/06/04 00:04
문제는 그 사건이 지역선거가 시작하기 직전에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수십명의 젊은 목숨을 앗아간 참사는 슬프게도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만약 천안함이 무언가로부터 공격받아 침몰한 것이라면, 그것은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역사적으로 북한이 문제를 일으키면 보수진영에 더 유리하게 선거 판세가 흐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고, 마침 4대강 사업을 비롯하여 이리저리 네티즌과 야당으로부터 끊임없이 비판받던 보수진영, 특히 여당인 한나라당에게 이는 정치적인 호재로 작용할 것이 명백해 보였다. 여당에서는 이 사건이 북한의 명백한 군사적 도발임을 기정사실화 했고, 보수 인사들은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응징', '심판'과 같은 단어를 쏟아냈다. 반면, 야당에서는 끊임없이 천안함 사건에 의혹을 제기했다.
남은 것은 국방부의 조사결과였다. 지방 선거 판세 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만한 사안이었기에 그 언제보다 신중하게 말을 아끼던 군 당국은, 제법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번'.
조사단에 따르면 천안함은 무언가로부터의 공격으로 인해 침몰했고, 공격한 것은 역시나 북한이었으며, 그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사고 지역의 바다를 쌍끌이 어선으로 탐색해 찾아낸 어뢰였다. 그 어뢰에는 '1번'이라는, 파란 매직으로 쓰여진 선명한 글자가 남아 있었다. 조사팀에서는 이 '1번'이라는 글자가 이 사건을 일으킨 것이 북한이라는 의심할 여지 없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네티즌의 반응은 차가웠다. 최첨단 과학수사를 하는 것처럼 선거기간 내내 조사를 하더니, 손으로, 파란 매직으로 쓴 듯한 '1번'이라는 글자를 두고 결정적인 증거라고 제시하는 모양새가 웃겨서였을까, 아니면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수많은 의문점들 때문이었을까, 네티즌들은 실소를 흘렸다.
결과적으로 북풍은 오히려 진보진영과 젊은 층을 더욱 집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고, 여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천안함 사건은 유엔 안보리에 회부된단다. 지금까지의 경과는 이렇다.
천안함 사건이 누구 소행이니, 의문점이 어떠니 하며 어떻다 저떻다 말하고 싶지는 않다. 서로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언론들과, 서로 정반대의 의견을 제시하는 전문가들, 그리고 그 아래에 숨겨져 있을 다양한 의도들, 그 모두를 걷어내고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슬프다. 바로 그 '1번'이라는 글자 때문에. 왜 하필 '1번'이란 말인가. 세상에 많고 많은 언어 중에 왜 하필 한글이란 말인가. 이 세상에서 단 한민족만이 사용하는 그 아름답고 위대한 언어가, 왜 하필 거기 적혀있어야 하느냐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