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알다시피 서해안에서 우리나라 해군의 천안함이 두동강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안에 있던 수십명의 군인들이 목숨을 잃은 참사였다. 최대 생존 가능 시간이 60 여 시간이라는 말에, 단 한명의 생존자라도 더 발견하기를 기도하며 뉴스 속보를 기다렸고, 하지만 차가운 아들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우리 모두는 지켜보아야 했다. 온 나라의 관심은 천안함 사건에 집중되었다.

문제는 그 사건이 지역선거가 시작하기 직전에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수십명의 젊은 목숨을 앗아간 참사는 슬프게도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만약 천안함이 무언가로부터 공격받아 침몰한 것이라면, 그것은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역사적으로 북한이 문제를 일으키면 보수진영에 더 유리하게 선거 판세가 흐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고, 마침 4대강 사업을 비롯하여 이리저리 네티즌과 야당으로부터 끊임없이 비판받던 보수진영, 특히 여당인 한나라당에게 이는 정치적인 호재로 작용할 것이 명백해 보였다. 여당에서는 이 사건이 북한의 명백한 군사적 도발임을 기정사실화 했고, 보수 인사들은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응징', '심판'과 같은 단어를 쏟아냈다. 반면, 야당에서는 끊임없이 천안함 사건에 의혹을 제기했다.

남은 것은 국방부의 조사결과였다. 지방 선거 판세 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만한 사안이었기에 그 언제보다 신중하게 말을 아끼던 군 당국은, 제법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번'.
조사단에 따르면 천안함은 무언가로부터의 공격으로 인해 침몰했고, 공격한 것은 역시나 북한이었으며, 그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사고 지역의 바다를 쌍끌이 어선으로 탐색해 찾아낸 어뢰였다. 그 어뢰에는 '1번'이라는, 파란 매직으로 쓰여진 선명한 글자가 남아 있었다. 조사팀에서는 이 '1번'이라는 글자가 이 사건을 일으킨 것이 북한이라는 의심할 여지 없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네티즌의 반응은 차가웠다. 최첨단 과학수사를 하는 것처럼 선거기간 내내 조사를 하더니, 손으로, 파란 매직으로 쓴 듯한 '1번'이라는 글자를 두고 결정적인 증거라고 제시하는 모양새가 웃겨서였을까, 아니면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수많은 의문점들 때문이었을까, 네티즌들은 실소를 흘렸다.

결과적으로 북풍은 오히려 진보진영과 젊은 층을 더욱 집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고, 여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천안함 사건은 유엔 안보리에 회부된단다. 지금까지의 경과는 이렇다.



천안함 사건이 누구 소행이니, 의문점이 어떠니 하며 어떻다 저떻다 말하고 싶지는 않다. 서로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언론들과, 서로 정반대의 의견을 제시하는 전문가들, 그리고 그 아래에 숨겨져 있을 다양한 의도들, 그 모두를 걷어내고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슬프다. 바로 그 '1번'이라는 글자 때문에. 왜 하필 '1번'이란 말인가. 세상에 많고 많은 언어 중에 왜 하필 한글이란 말인가. 이 세상에서 단 한민족만이 사용하는 그 아름답고 위대한 언어가, 왜 하필 거기 적혀있어야 하느냐는 말이다.





2010/06/04 00:04 2010/06/0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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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입장에서 여자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게 참 부담스러운 일이긴 하다. 주위에 친한 여자친구도 많고, 물론 이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 중에도 여자가 꽤 있으니까. 그런데 입이 간질간질한 걸 어쩌랴. 쓰고봐야지. 다행히도 이 블로그를 찾는 대부분의 여자분들 중에는 이런 분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요즘 내 또래, 즉 20대 초중반의 여대생들을 나는 몇 가지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듯 하다.
자존심, 미니스커트, 검은스타킹. 하이힐.

특히 얼굴이 예쁠수록, 집에 돈이 많을수록, 몸매가 좋을수록, 그리고 내 주위의 사람들이라면 학벌도 이만하면 괜찮은 편이니, 아니나 다를까 그들을 휘감고 있는 그 보기 싫을 정도의 당당함은 그야말로 안타깝기 그지없을 정도다.

하긴 20대 초중반, 안그래도 여자가 제일 예쁠 때라는 시기에 얼굴도 예뻐, 몸매도 좋아, 학벌도 좋아, 집에 돈도 많아, 그야말로 어디 하나 꿀릴 게 없으니 자존심 좀 쎄면 어때, 그런 사람이 당당하지 않으면 누가 당당하겠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뭐 틀린 말이 아니긴 하다. 단지, 20대 초중반의 대부분의 여대생들이, '나 이만큼 비싼 여자다.' 라는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달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존심이란게 참 희한한 모습일 때가 많다. 주위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화로 신나게 남의 뒷담화를 나누는 모습이라던가, 조모임 시간에 한참 늦어놓고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테이크 아웃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보거나 할 때, 혹은 토론 중에 엉뚱한 소리를 하다가 슬슬 자기 말이 안되는거 같으면 '아 제가 틀렸네요' 말은 못하고 어찌어찌 비슷한 이야기에라도 묻어가려 발버둥치는 모습을 볼 때면 특히 그렇다.

오히려 주위에 정말 멋진 여자들, 그게 여대생이든, 직장인이든, 누가 봐도 '대단하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차라리 평소에는 차분하고, 겸손하고, 편한 모습 들이었는데 말이다. 남의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뭔가 자신의 일을 해야 할 때는 누구보다 끈기있고, 열정적이었고, 그리고 그 끝에 자신이 완성한 결과물을 가지고 남들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곤 했는데...



남자가 쓰는 여자의 이야기라, '너나 잘하세요', 혹은 '남자여자가 아니라 사람이 다 그런거에요' 하는 말도 듣겠지만, 어쩌랴. 그걸 알면서도 내 눈에 비치는 그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여대생들의 모습은 여전히 그런걸.





2009/12/09 00:42 2009/12/0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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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전문 여론조사 기관에 의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넘었단다. 확인은 못했지만, 얼핏 보니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50%조차 넘었다고 한다. 국민의 절반이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블로고스피어의 반응은, 역시나, 냉담하게 그지없다. 10%대로 지지율이 곤두박질 칠 때는 그 숫자 하나하나에 희희낙낙하며 '이것봐라, 국민 대다수가 당신을 지지하지 않는다!' 라며 외치던 수많은 블로거들은 이 인정하기 싫은 수치 앞에 당혹스러워 하며, '어떻게 이럴수가', '조작이 의심스럽다.', '말도 안된다. 그저 여론몰이 용이다.' 등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이를 넘어서, 날 더욱 당혹케 하는 반응조차 보이고 있으니, 이를테면 '블로거들이 투표를 해 보자. 몇 %의 지지율이 나오는지.' 따위의 시간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통계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여론조사라는 것이 표본이 모집단에 대해 어느정도 수긍할만 한 대표성만 가진다면 그에 따른 결과는 믿을 만한 정확도를 가진다는 것 정도는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충분히 배웠으며, 대학에 와서 통계학을 또다시 배우면서도 확인한 내용이다.

두 여론조사에서 하나는 40%, 하나는 50% 지지율이 나왔다면, 물론 그 차이가 상식 이상으로 큰 것은 의아하긴 하나,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기에는 별다른 논리적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 절반은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한다.'

네티즌은, 그것도 블로그를 가지고 운영하는 네티즌은, 게다가 올블로그에 자신의 블로그를 등록하고 타인의 글까지 볼줄 아는 네티즌은, 확실히 대한민국 국민의 극소수에 불과하다.
또한 이 극소수조차도 다양하다기보단 거의 유사한 성향을 띄는데, 이는 아무리 넓게 잡아도 1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 더 넓게 잡아도 40대 초중반 정도까지의 연령 분포를 가지며, 컴퓨터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에 따른다.

하지만 '국민'이란 그렇지 않다.
입담 좋은 택시기사 아저씨, 시장에서 시금치를 파는 아주머니, 가끔 보는 중국집 배달부 아저씨, 동네 미용실 아줌마, 그리고 노인정에서 바둑 두시는 할아버지들, 그 분들의 대부분은, 아직 네티즌이지만 블로거는 아니고, 당연히 이런 블로고스피어에는 관심도 없이 그들의 기준만으로 현재의 대통령을 지지하는 분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들 또한, 당연히, '우리'다.

내 스스로가 네티즌이자 블로거이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모순일 지 모르나, 나는 네티즌이라는 집단에 대해 많은 회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결국 사람에 대한 회의인지도 모른다. '다름'은 곧 '틀림'이라고 믿는 우리에 관한 회의 말이다.

감싸안을 수는 없을까. 이 모든 것을.




2009/09/19 02:36 2009/09/19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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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우리나라는 반도체 강국이다. 디스플레이 강국이며, 휴대폰 강국이다. 세계 1위의 반도체 회사도 있고, 디스플레이 역시 세계 순위를 우리나라 기업끼리 다투는 모양새다. 미국에서, 유럽에서 우리 나라 휴대폰이 인기가 많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정리하면, 종종 들어왔듯이,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다'

하지만 ITInformation Technology라는 말의 의미와, 위와 같이 우리가 이 단어를 사용하면서 흔히 떠올리는 것 사이에는 슬프게도 약간의 간극이 존재하는 듯 하다.
IT 강국 대한민국에는, 소프트웨어가 없다.

반도체도, 디스플레이도, 이동통신도, 이 모든 건 하드웨어다. 물론 하드웨어를 개발하기 위한 기술력이란 것은 충분히 소프트웨어라 부를 수 있긴 하나, 우린 소프트웨어 그 자체로써 세계적으로 인정받을만한 상품의 가치를 가지는 어떠한 것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가 신봉하는 IT의 선두주자, 삼성과 LG는 기계를 만드는 회사이지 정보를 파는 회사가 아니다.

더욱 빠르고, 더욱 큰 용량의 반도체를 삼성은 끊임없이 개발해내고 있지만, 그 반도체 위에 올라가는 소프트웨어는 슬프게도 모두가 외국의 것이다. LG가 아무리 선명한 화질의 LED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더라도, 그 디스플레이 위에 펼쳐지는 컨텐츠는 외국의 것이란 말이다. 애니콜 휴대폰으로 통화를 할 수 있게 하는 기술 역시 퀄컴의 것이지 삼성의 것이 아니다. 컴퓨터는 Microsoft의 Windows가 있어야만 돌아가고, 인터넷을 하려면 Google을, 그림을 그리려면 Adobe의 힘을 빌어야한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에게, 당장 떠오르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회사가 있긴 있는지 묻고 싶다. 왠만한 사람이라면 두 개 이상 생각해 내기 힘들 것 같다. '한글'의 한글과컴퓨터, 'V3'의 안철수연구소.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의 가치는 주식으로 결정된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삼성전자는 주당 70만원을 훨씬 웃도는데, 한글과컴퓨터는 주당 4천원이다. 안철수연구소라고 해봤자 고작 1만 5천원이다. 삼성전자는 7만원짜리 고급 스테이크를 10번은 먹을 수 있는 가격인데, 한글과컴퓨터와 안철수연구소를 합쳐봤자 가족이 겨우 자장면 시켜먹을 가격이다. 탕수육도 못시킨다. 이것이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현실이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정부에서 IT에 189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듯 하다. 189조원, 엄청난 돈이지만 실제로 정부에서 투자하는 돈은 연간 1.5조원 정도에 그치는 듯 하고, 나머지는 민간유치란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정보통신부에 과학기술부까지 없애놓은 정부가,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일을 했다.

그런데 여전히, 안타깝게도, IT란다. 소프트웨어가 아닌 IT란다. 저 많은 돈은 또다시 반도체에, 디스플레이에, 휴대폰에 투자가 될 것이다. 세계 1위인데, 지켜야 하는게 옳긴 하다. 그리고 남는 돈이 있다면 3G, 4G 이동통신망 까는데 쓰이겠지. 그 쪽은 설비투자비가 엄청나게 드니까.
반도체만큼, 디스플레이만큼 투자할 필요도 없다. IT에 189조원을 쏟아붇는다면, 그 10%만, 아니 5%만 소프트웨어에 투자할 수 없을까? 이 척박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에 단비가 될텐데.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는 건, 그 189조원을 투자하는 'IT산업의 미래비전'이라는 계획에 안철수 씨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니, 그리고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대로 소신껏 일을 해온 분이니 말이다.


2009/09/09 14:52 2009/09/0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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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노래를 블로그에 올려서 다른 사람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
블로그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게 되는 생각이다.

상당히 유아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음악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모든 저작물에는 그 저작권이란 것이 있다.
블로그에 올린다는 것은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저작물을 유포하는 행위나 다를 바 없다.
곧, 이는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한다.

내가 만들었으면, 그건 내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가 내 것이라면, 다른 사람이 허락없이 함부로 내 것을 사용하거나 훼손시켜서는 안된다.
내 크레파스를 쓰려면 나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고, 친구의 카메라가 마음에 들면 그 친구의 허락을 구하고 빌려 써야한다.
이게 상식이다.

참 당연한 말인데, 이 글을 적고 있는 내 마음은 이상하리 만큼 언짢다.
화가 나려고 한다.
그러니까,
음악조차 그래야 하는가.
2009/08/31 12:08 2009/08/3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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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타임라인 위에 그려볼 수가 있다.
길다란 가로선을 그려놓고, 가운데 쯤에, 음.. 마땅한 것이 없으니 지우개를 올려 놓자. 여기가 현재다.

그러면 그 왼쪽으로 적힐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역사교과서 개정 논란이나 과거사 청산 논란 정도가 대표적이다.
오른쪽으로 적히는 것들도 있다. 대운하 논란이나 한미FTA 논란 등이 있겠다.

그리고 시간은 흐른다.
가운데 놓아두었던 지우개를 오른쪽으로 밀면, 지금까지는 지우개의 오른쪽에 있던 것들이 이젠 왼쪽으로..

아니다, 지워져버렸다.
뭐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당신은 기억나는지,
지우개의 오른쪽에 있었던 것들이.
우리의 왼쪽에 여전히 적혀 있어야 했던 것들이.




2009/01/19 14:48 2009/01/1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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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기사:

[뉴시스] '성적 비관' 초등생 자살


열 살 짜리 꼬맹이가 자살을 했다. 성적 비관이란다.
'세상이 너무 싫어 먼저 갑니다. 엄마, 아빠 죄송합니다.' 라는 유서까지 남긴 채로.

난 열 살 때 뭐했지, 라고 생각해보면 모래 운동장에서 죽어라고 뛰어다니면서 축구한 기억, 친구들과 모여앉아 살구하던 기억, 질릴대로 질린 치토스를 억지로 먹고는 따조를 모으던 기억, 레고 만들던 기억만이 떠오를 뿐이다.

더욱 가슴아픈 건, 이런 소식을 이제는 그저 무덤덤하게 보고 지나칠 만큼 가끔 한번씩 일어나는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2007,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 EBS 지식채널e


우리 나라, 발전할거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경쟁력을 지닌,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되어있을거다.

에디슨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달걀을 품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는데도 세계 최고의 발명가가 되었고,
아인슈타인은 고등학교 까지 낙제를 했는데도 수시로 운좋게 대학 붙어서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가 되는데,

유치원부터 외국어 시험을 쳐서 수준반 분반을 나누고, 국제중 입시를 위해 초등학교 저학년 부터 과외에 학원을 다니며 엄청난 지식을 습득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아가들은 도대체 얼마나 똑똑할 것인가. 그들이 성인이 되는 20년 후, 30년 후의 우리 나라를, 당신은 지금 상상조차 할 수 있는가.

자그마치 열 살 짜리가 성적 비관으로 자살할 만큼, 우리 나라의 미래는 눈부시도록 찬란하다.




2009/01/19 14:41 2009/01/1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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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기사:
[인권OTL] 약이 있는데 왜 죽어야 합니까 - 한겨례21


마치 주입식 교육을 받은 것처럼, 마치 종소리를 들으면 침을 흘리며 먹이를 기다리던 파블로프의 개가 된 것처럼, 난 이 기사 제목을 보자마자 이 단어를 떠올렸다. '자본주의'.
맥주를 한 캔 마셔서일까, 눈물이 날 정도로 화가 난다. 소름끼칠 정도로 두렵다.

재작년, 그러니까 내가 2학년일 때 나는 종종 기숙사 룸메이트이자 초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였던 고래자신의 닉네임을 고래라고 정했던 기억이 난다.와 함께 치킨에 맥주를 시켜 먹었다. 한창 사회에 관심이 많을 나이였기 때문인지, 우린 자주 이 놈의 사회에 대해 나름 진지하고 열띤 토론을 벌였었다. 그 때 그 녀석이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전 세계 인구가 하루 세 끼를 넘게 먹고도 훨씬 많이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는데, 왜 지구 어딘가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몇 분에 한 명씩 굶어 죽어야되노. 하루에 세 벌을 갈아입어도 남을 만큼의 의복이 생산되는데, 왜 지구 어딘가에서는 하루에도 몇 명씩 사람들이 얼어죽어야되노. 니는 이게 정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하나."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너무나도 깊게 아는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다시피 한 내가 왈가왈부 하는 것은 충분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자본주의 외에는 어떤 가능한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절규하는 저들의 목소리는 사회학에 대한 지식과는 별개로 충분히 의미있지 않을까.

약이 있는데 왜 죽어야 합니까.
2009/01/19 14:39 2009/01/1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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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무언가 그럴 듯한 모양새로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안되겠다. 두서가 없더라도 머릿 속에 있는 고민들을 있는 그대로 적어야겠다.

그래, 이건 변명이다.
 



요즘 대학생은 항상 욕을 먹는다.
'젊은 것들은 예의가 없다.' 이런 말이야 고대로부터 항상 내려왔다고 하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지금의 상황은 또 다르다.

공동체를 생각할 줄도 모르고 오로지 나한테 유리한 것만 생각한다.
학점 딸 생각만 하고 토익 점수 올릴 생각만 하지, 사회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대학생의 정치적 보수화는 이제 새로이 들먹이기 식상할 정도이다.
지난 총선에서 20대 투표율이 19.3%라는 잘못된 소문(참고: 샌드위치 20대, 이유는 있다, 매일신문)마저 그것이 마치 진실인 양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요즘 한참 논란이 되고 있는 촛불시위도 초기에 '중, 고등학생은 교복입고 나오는데, 오히려 대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대학생에게 곱지 않은 눈초리가 이어졌다.

너희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불행히도 마땅한 변명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기성세대가 요즘 젊은 것들에게 불만스러운 만큼, 요즘 젊은 것들 스스로도 혼란스럽다.



사회학 서적, 철학 서적을 읽는 대학생들에게 "요즘 대학생들은 대학 나와서도 할 줄 아는게 없다"며 꾸짖지 않았던가.
대학생들 사회의식 없다고 꾸짖는 인사부서 부장님, 토익 900 못넘는 대학생 입사원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지 않는가.
'요즘 시대엔 학점, 어학연수는 기본이고 공모전과 인턴 경험도 필수'라며, 대학을 돌아다니며 강연회를 열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 사회의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던가.
절대로 손해 안보고, 우리 모두가 잘 되는 것은 관심 밖이고 단지 나 하나만 잘 되면 좋은거 아닌가. 지금의 사회가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회인가.
과연, 이 놈의 나라가 어디로 흘러갈지 걱정을 하며 오늘도 밤늦게까지 물대포 맞으며 머리를 짖밟히며 촛불 시위를 하고 있는 대학생과, 시위하러 간 친구를 비웃으며 오늘도 밤늦게까지 토익공부 하던 대학생 중에서, 당장 5년 뒤에 10년 뒤에 누가 더 잘먹고 잘살것 같은가.

이렇게 치기어린 반항심으로 꽥 소리를 질러보지만, 이 조차도 스스로 비참해질 뿐이다.



이제는 식상해져버린 88만원 세대라는 말- 바로 우리, 대학생을 위해서 학교 게시판마다 이런 포스터가 도배되어 있었다. 한창 새내기들이 싱그러운 풀내음을 맡으며 캠퍼스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던 4월의 캠퍼스의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플랭카드까지 붙어있었다. 주최주관은 우리 나라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본다는 '대학내일'이라는 신문이었고, 후원은 우리 나라의 명문대라는 이화여대였다.

대학생이여 너의 스펙에 목숨을 걸어라!

목숨을 걸란다, 목숨을.



이게 사회의 대답인가,
'대학생이여, 너의 스펙에 목숨을 걸어라!'


2008/06/07 03:27 2008/06/07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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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에 들어서 서점을 찾거나 우연히 신간 소개를 보게 될 때, 아니면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보게 되더라도 종종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처럼 '나쁘다'라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를 가졌던 적이 있었을까?'
''착하다'라는 단어가 이렇게나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때도 또 있었을까?'

이를테면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혹은 '모르면 당하고 알면 인생이 쉬워지는 나쁜 심리술 100가지'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흥미로운 것은, 이 '나쁜'이라는 말이 기존의 가치체계에 반하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수식어로 곧잘 사용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점이다. 여기서 '기존'이라는 말은 곧잘 '낡은' 혹은 '오래된' 이라는 말로 둔갑하기도 하는데, 사실 이 모든 어휘들은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래서 이 '기존'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대치되는 위치에 서 있는 '나쁜' 이라는 말이 오히려 긍정의 뜻을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면 더욱 쉽게 알 수 있는데, 바로 '나쁜'이라는 형용사가 '여자'라는 단어 앞에 붙을 때이다.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2004)
배드걸 가이드 - 나쁜 여자가 되어 원하는 것을 다 가져라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2000)
착한 여자 콤플렉스 벗어나기
나쁜 여자 cool 한 여자
나쁜여자로 사는 법 - 착한딸 신드롬에서 벗어나기  

대부분의 경우에 '나쁜 여자'라는 단어는 '기존의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여인상'에 반대되는 의미로써, '자기 표현이 확실하고 당당하며 능동적인 여인상'을 나타낸다. 다분히 마케팅 전략의 냄새도 풍기는 이런 작명 추세 덕분에 어느새 '착한 여자 < 나쁜 여자'가 되어버린 듯 하다.



하지만 '나쁜 여자'가 각광받을 수록, 더욱 '착한 여자'가 그리워진다.
'자기 표현이 확실하고 당당하며 능동적인 여자'보다는 '지나치게 자신만을 내세우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며,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여자'가 그립다.

주위의 사람들 중에 자기 표현이 확실하고 당당한 사람은 넘치게 많지만,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나 남을 먼저 배려하는 습관이 몸에 베인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조금이라도 더 '튀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요즘의 사회 풍토와도 관련이 있다.
그래서일까, 다른 사람의 말을 자르고 자신의 의견을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버릇없는 사람'이라고 하기 보다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말을 아끼는 대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을 두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소극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쁜 여자'의 긍정적인 이미지에 숨어있는 부정적인 모습들이 안타깝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모습들을 오히려 자랑스러이 여기는 태도들과, 따라하려 허둥대는 모습들이 안타깝다. 그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그것이 단지 몇몇 개인의 취향이나 판단이 아닌 우리 사회의 풍토라 느껴진다는 점이다. 지금의 사회는 분명, 들을 줄 아는 사람보다는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더욱 각광받는 사회다.




2008/02/05 08:59 2008/02/0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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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착하다'의 기준이 뭐예요? Tracked from Kimdahee.com 2008/02/05 21:12 Delete

    01 요즘처럼 착하다는 말을 아무 데나 붙여쓴 적이 있었던가.착한 얼굴, 착한 몸매, 착한 가격...거기에 붙어 있는 '착하다'의 정체는 뭘까?어쩌나 보게 되는 쇼프로에서는 몸매가 참 착해요. 덕분에 안구 웰빙이 되요. 라는 어법상 틀린 말을 거침없이 해댄다. 사전적 의미의 '착하다'는 말과 행동이 곱고 바름을 일컫고, 善이 곧 正이었던 예전에는 착한 사람은 칭찬받을 대상이었다.(예전이라고 하는 것은 요즘에는 자신할 수 없어서다.)그렇다면 S라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