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쓰레기통'

104 POSTS

  1. 2011/12/05 등록금, 그리고 요즘 대학생 이야기 (2)
  2. 2011/02/13 스마트폰과 모바일 플랫폼, 그 흐름에 대하여 (4)
  3. 2010/07/01 친구
  4. 2010/04/19 마음 가는대로 쓰는 글 (12)
  5. 2010/03/30 문자질 (8)
  6. 2010/03/21 희망 (2)
  7. 2010/02/25 영혼기병 라젠카 (4)
  8. 2010/02/16 열정
  9. 2010/02/13 정의 (2)
  10. 2010/01/31 그늘 (4)
  11. 2010/01/29 해가 지나버린 다이어리 (4)
  12. 2010/01/28 착각 (1)
  13. 2010/01/05 (10)
  14. 2009/12/31 마치 날 위해 신이 놓아둔 듯 하여 (4)
  15. 2009/12/16 경영학은, 과학일까? (9)
« Previous : 1 : 2 : 3 : 4 : 5 : ... 7 : Next »
애초에 별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포기했단다. 교과부가 전면 반값 등록금의 도입을 사실상 포기하고 일부 계층에게만 등록금 혜택을 주기로 확정했다. '등록금 혜택'이라는 단어는 애초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는데, 이는 등록금이 인하되는 것이 아닌, 그저 장학금을 지원을 확대하는 방식일 뿐이다. 이렇게 확대될 장학금 혜택 역시 그 대상은 상위 70% 이하, 일반 학생의 경우 직전학기 성적이 B학점 이상이어야 한단다. 물론 이러한 대상에 포함이 된다 하더라도 등록금의 반값 만큼 장학금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며,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부여하기 때문에 수혜자의 대부분이 반값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장학금을 받게 되어 있다.

파이낸셜 뉴스, "교과부 '반값 등록금' 도입 포기"
- 교육과학기술부가 전면 '반값 등록금' 도입을 포기하고 소득 상위 70%(7분위) 이하에게만 등록금 인하 혜택을 주기로 사실상 확정했다. (중략) 혜택 대상은 소득 상위 70% 이하이며 일반 재학생은 직전 학기 성적이 100점 만점에 80점(B학점) 이상, 장애인 재학생은 70점 이상이어야 한다. (이후 생략)

대통령에 대한 레임덕 현상이 시작된 지 오래이며, 이미 다음 총선과 이후 이어질 대선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지금에 와서야 저번 대선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던 반값 등록금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곱게 보이지 않고, 애초부터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공약이라 그에 대해 기대했던 것도 아니지만, 정부에서 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그리고 그에 동조하는 목소리들을 보자니 그저 절망스러울 뿐이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공약이었다. 사람들이 기호 1번 이명박에게 '정말 가능하냐'라고 물을 때마다 그는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지만, 사립대학들이 무슨 수를 써서든 등록금을 내리려 하지 않을 것임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등록금 원액을 절반으로 낮추는 것은 모든 사회의 비난을 감수하고도 한 해에 5~10%씩 꾸준히 등록금을 인상해온 대학의 모든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한번 얻어낸 그들의 이득을, 정부에서 무슨 수로 빼앗아 온다는 말인가. 도대체 어떤 회유와 압박으로 그것을 가능토록 한다는 말인가. 지금이 정부 말 안들으면 기업이건 사학재단이건 말 그대로 '죽일 수 있던' 박정희 시대라도 되나. 하긴,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표가 지난 대선에서 많이 작용하긴 했지만. 그렇기에 정부가 어떻게든 구색을 맞춰서 국민들에게 '우리 등록금을 낮추려 노력했다'라는 티라도 내보려면 장학금 형식으로 지급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 장학금 역시 사립대학에서는 쉽게 주려 하지 않을 것이니, '반값 등록금'이라는 이름의 공약을 지키려면 결국 국가에서 부담해야 할 것이었다.

물론 그 때부터 추측 가능했던 뻔한 반론 혹은 변명이 역시나 지금에도 존재하며, 그 중에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것들도 있다. 먼저, 이제서야 반값 등록금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국가의 경제 상황이 계속 위기였다는 점이 작용했을 수 있다. 종합주가지수 3000은 충분히 넘길 수 있는 나라인데 '정치를 못해서' 경제가 이모양이라던 현 정부와 여당의 주장은, 이젠 '정치는 잘했는데' 전세계적인 경제위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일 뿐이라고 한다. 저번 정권 때  몇 번이나 전세계 경제를 충격에 빠뜨렸던 오일쇼크가 생각나기는 하지만, 그건 저번 정권에 대한 변명일 뿐 이번 정권에 대한 비판이 될 수는 없다 생각하기에 뭐 딱히 할 말은 없다. 단지 좀 희한한 것은, '너희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 현 정권은 꺼져라'던 국민정서가 '경제가 힘들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 말 잘듣자.'로 변해 있다는 점 정도이다.

국가의 재정을 이용해서 반값 등록금 공약을 위한 장학금의 재원을 마련하려면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장학금을 지원하는 셈이고, 이는 곧 국민들이 장학금을 내주는 셈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그 많은 돈을 국민 세금으로 내자는 건가' 혹은 '결국 니가 받는 돈은 너희 아버지가 세금으로 내는 돈이다' 따위의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깊은 생각을 할 줄 알면서 왜 누가 잘하고 잘못한 것인지를 가리지 못하는건지 모르겠다. 이는 결국 '사립대학이 스스로 등록금 안내리겠다고 하면 등록금 못낮추는거지 뭐.'라는 주장일 뿐이며, 애초에 공약 자체가 반값 등록금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 없이 말만 번지르했기에 나오는 반응일 뿐이다. 결국, 반값등록금은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공약인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어른스러운 듯한 말투로 '너희들이 생각이 짧다'라고 말할 뿐이다. 준비되지 않은 공약을 내놓은 사람을 탓하지는 않고, 그 공약에 속은 사람들만 탓하고 있는 셈이다. '으이그 병신들아. 너희들은 그걸 믿었냐.'라며 낄낄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찌되었든 간에 분명한 것은 지금의 등록금은 비정상적으로 비싸다는 점이고, 또하나 분명한 점은 이러한 등록금 문제를 지금의 정부와 여당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이야 반대가 워낙 극심했다고 쳐도, '제발 좀 지켜주세요'라던 핵심공약을 '아 그런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까 못할 것 같아.'라며 지키지 못한 셈이다. 지탄받아 당연하고, 욕을 먹어 당연하다. '그래도 열심히 하고있지 않느냐?' 라고?

노무현 정부에서 강원랜드를 만들어서 국민들을 빚쟁이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할 줄은 알면서 왜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모두 빚쟁이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는 그렇게도 무관심한가. 당신들이 만들고 싶은 나라가, 당신들이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은 나라가 '공부를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나라였나. 그렇게도 '가난해서 공부 못한 한'이 맺힌 사람들이, 한 학기 대학에 다니기 위해서 1년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에는 왜그렇게 여유로운가. 대학 졸업할 때 4천만원 빚을 지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어야 하는 지금 젊은이들의 현실에 왜그렇게 여유로운가.

고액 아르바이트인 과외를 할 수 있는 대학생은 전체의 5%도 되지 않는다. 학교 다녀와서 롯데리아에서 시급 5천원 받으며 하루에 여섯 시간 씩, 겨우 3만원이라도 벌어서 등록금에 보태겠다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을 앞에 두고 내 놓은 정책이 '지원 자격: B학점 이상'인가. 그것도 누군가는 C, D를 받아야만 하는 상대평가 제도 아래에서. 이건 정말이지 '시스템의 문제' 아닌가. 그래도 여전히 당신들은 그렇게 생각하나, '자기가 노력을 안해서 그런거지...'



대학생들, 촛불시위니 하는거 선동당해서 시간 버리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길 바란다. 과외니 알바니 하는 것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는게 훨씬 금액도 많고 큰 효도다. 물론 너희 중에 20%만 받을 수 있으니 알아서 열심히 해서 그 안에 들어야 한다. 나머지 80%는 제대로 노력하지 않은 것들일 뿐, 그런 것들까지 사회에서 신경써줘야 할 것은 아니다. 원래 사회란게 그렇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들이 원하는 사회란 이런 모습이지 않은가.


2011/12/05 13:58 2011/12/05 13:58
Trackback URL: http://ipuris.net/textcube/trackback/507
사실, 이미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내가 진지한 척을 해가며 글을 쓰는 것에 흥미를 잃은지는 제법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무언가는 이미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람들 역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걸 말하기 위해 내 에너지를 쏟아붇는 일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들 떠벌릴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내 스스로가 깊이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요즘 뉴스란 것을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다. 그래도 컴퓨터과학이라는 것을 전공으로 학문에 뜻을 둔 학생이기에, 이쪽 분야에 관심이 없거나 관심이 있어도 그리 깊이있게 알지는 못하는 많은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IT라는 이 분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잘 알고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우리나라의 IT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한심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참다참다, 이렇게 글을 쓰려한다. 이쪽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이야기를, 하지만 이 답답한 대한민국 그 어느 언론도 말하려 하지 않는 이야기를 말이다.



그러니까 모든 것의 시작은 아이폰이었다. '애플'이라는 회사가 2007년, 아이폰이라는 것을 출시한 것을 기점으로 이 세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 나라를, 그리고 전세계를 흔들어대고 있는 그 스마트폰이라는 것의 시작이 바로 2007년 애플에서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부터였다.

사실 스마트폰이라는 기기 자체는 그 이전부터 존재했었다. 단지 일반의 사람은 그런게 있는 줄도 몰랐던 그런 기기였을 뿐이다. 그 때의 스마트폰은 예쁘지도 않고 사용하기에도 불편했으며, 앱이라는 개념도 희미해서 그냥 컴퓨터를 모니터 화면만 작게 만들어 놓은 수준이라 '이럴 바에는 컴퓨터를 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런 제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폰이라는 것이 세상에 튀어 나오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사람들은 터치 스크린에 감각적인 디자인, 그리고 다양한 앱을 통해서 별의 별 기발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이 아이폰이라는 제품에 열광했다. 아이폰은 폭발적인 판매량을 보이며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2008년 말 내가 미국 보스턴에 있던 라이코스에 갔을 때 그곳 CTO, 즉 최고기술책임자라는 사람이 꼽은 '현재 미국의 3대 IT 이슈' 중 하나가 바로 아이폰이었다. 우리 나라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2010년 말이 되어서야 들어오게 된 이 아이폰이라는 녀석은, 사실 이미 그 때부터 세상을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아이폰은 기존의 스마트폰에 비해 획기적으로 빠르지도 않았고, 그들보다 크게 가볍지도 않았으며, 그들보다 그다지 얇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아이폰에 열광한 이유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였다. 아이폰은 예뻤으며디자인, 사용하기편리했고UI/UX, 손쉽게 인터넷으로부터 음악을 결제해서 받아 들을 수 있었으며iTunes, 톡톡 튀는 신기한 일들을 할 수 있었다. 아이폰이 성공은 소프트웨어의 성공이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미 애플에게 선수를 빼앗긴 상태였지만 사실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던 기업인 '구글Google' 역시 모바일 플랫폼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안드로이드Android'였다.

여기서 헤깔리기 쉬운 것이 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스마트폰 이름이 아닌 모바일 플랫폼의 이름이다. 그러니까 스마트폰을 컴퓨터로 비유를 하자면, 안드로이드는 윈도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애플의 경우에는 스마트폰(=아이폰)도 애플이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는 운영체제도 iOS라 하여 직접 만든 것인데, 그에 반해 구글은 스마트폰 자체는 만들지 않으면서 그 안에 들어가는 안드로이드만 공개를 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폰이 이렇게 '대박'을 터뜨리자, 구글은 2008년 그 안드로이드라는 플랫폼을 소스코드까지 완전히 공개한다. 애플은 아이폰에 들어가는 iOS는 애플만이 그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때문에 아이폰용 앱을 개발하려면 애플에 허가를 받아야만 하고, 일정액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때문에 '아이폰 호환 스마트폰'과 같은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 아이폰과 관련된 모든 권리는 애플이 가지고 있으며, 때문에 오직 애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다. 그에반해, 구글은 자신의 안드로이드를 모두에게 공개하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모두에게 공개함에 따라, 생각치도 못하던 컴퓨터 회사에 일격을 맞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그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가져다 쓰기 시작했다. 아이폰에 대응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출시를 해야겠는데, 하드웨어야 기존에 만들던 생산라인이 있고 기술력이 있으니 만들어낼 수 있다 쳐도, 내부적으로 돌아갈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그때부터 만들어서는 너무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난감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기업 중 하나인 구글에서 만든 안드로이드를 공짜로 오픈을 해주었으니, 이는 너무나도 매력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미 아이폰이 한번 휩쓸고 지나간 그 자리에, 시간이 조금 흘러 다른 회사들도 이제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폰들을 내놓기 시작한다. 더이상의 '신제품 휴대폰'은 찾기 힘들어졌다. 그게 2009년 까지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2010년, 그리고 지금 2011년의 상황은 어떠한가. 2010년, 이미 늦어버리긴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래도 선수를 두세걸음 빼앗긴 상황에서의 대응 치고는 삼성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아이폰이 성공한 이유가 소프트웨어라고 할지라도 결국 하드웨어란 것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실제로 아이폰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들이 삼성과 엘지의 로고가 찍혀있는 것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소프트웨어 기업들 사이의 소프트웨어 전쟁에, 이제와서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하드웨어 기업인 삼성이 무리를 해가며 끼어들 필요도, 승산도 별로 없어 보인다. 세계 속의 삼성을 이끌어온 것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즉 하드웨어였다. 스마트폰 역시 스마트폰 하드웨어의 공급사로 자의든 타의든 포지셔닝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더욱 유리한 위치에서 세계의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저 하드웨어 공급업체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애플 역시 이제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있다. 그들이 세계를 놀래킨 소프트웨어 대부분의 측면을 다른 기업들에게 따라잡히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은 '애플만의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른 제품들이 더욱 어필하고 있다. UI/UX 적인 측면 역시 아직은 애플이 더 앞서지만 구글 안드로이드가 급속하게 그 수준을 따라잡고 있다. 2011년 초, 지금의 아이폰은 더이상 특별한 스마트폰이라 보기 힘들다.  플랫폼 전쟁에 뒤쳐져있던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세계 최고의 휴대폰 회사였던 노키아와 손잡으면서 대대적인 역습을 준비하고 있다.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다. 애플의 폐쇄적인 정책과 구글의 오픈 정책의 충돌로 보는 사람도 있고, 수많은 앱과 그 앱을 개발하는 개발자를 포함하는 애플과 구글의 생태계 전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4세대 이동통신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 시작하면 바로 올해, 그리고 늦어도 내년에 일어날 일이다 스마트폰을 위시로한 모바일 디바이스는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인터넷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면 판도는 또다시 바뀔 수 있다. 이 외에도 다른 많은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다음 세대의 플랫폼을 두고 세계의 모든 IT 기업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세상이 이렇다. 그런데 자칭 I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은 여기서 최소한 두걸음 이상 뒤쳐져 있게된 이유가 뭘까. 물론 하드웨어 회사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IT 기업이라는 삼성과 LG의 대응이 너무나도 안일했던 것이 큰 이유다. 2007년에 나온 아이폰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2009년 12월에 와서였으며, 애플의 CEO가 16개국 동시 출시라며 발표했던 아이폰4가 왜인지 한국을 뺀 15개국에서만 판매가 되고 우리나라는 3개월이 지나서야 판매가 시작되었다. 삼성이 세계적인 흐름을 읽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랬다면 지금 삼성은 정말이지 위험한 것이다. 단지, 여전히 잘 팔리던 휴대폰에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플랫폼이 변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나라 정부의 대응은 더욱 한심했다. 어떤 입김이 불었는지는 몰라도, 아이폰을 포함한 다른 스마트폰들이 들어오는 것 자체를 일단 막기에 급급했고, 삼성이 새로운 스마트폰을 출시할 때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출시일을 늦추며 시간을 벌어주는데 집중할 뿐이었다. 2008년에 미국에서는 한참 사회적인 이슈로써 이야기되었고,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확정된 인터넷 중립성에 관한 논의 역시 이제와서야 통신사들 눈치를 살피며 일단 틀어막고 있는 실정이다. 여당 야당 할것 없이 모두 대운하가 어쩌니 하고 있었을 뿐이지, 2008년 2009년 그 소용돌이 치던 세상에 위기감을 느낀 곳은 없었다. 21세기를 맞이해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를 없애버린 정부에 얼마나 큰 기대를 하겠냐마는 말이다.

그리고 가장 한심스러운 언론은 이런 전세계의 플랫폼 전쟁이 돌아가는 이야기에는 입을 꼭 다문 채, 삼성과 정부의 눈치나 살피기에 바빴다. 2010년 6월에 나온 갤럭시S의 하드웨어 성능을 2009년 7월에 나온 아이폰3Gs와 비교를 하는 기사나 실어댔고, 지금에 와서는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 아이폰4의 데스그립 현상아이폰의 특정 부위를 잡으면 통화감도가 떨어지는 현상을 아이폰4가 3개월이나 늦춰져 출시되던 그 때에는 마치 통화가 불가능한 스마트폰인 마냥 언론이 호들갑이나 떨고 있었다. 이런 기사들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가.

'갤럭시가 아이폰보다 더 빨라'
'갤럭시가 아이폰보다 화면이 더 커서 편리'
'갤럭시는 DMB 기능도 되'
'갤럭시가 아이폰보다 더 가벼워'

얼굴이 화끈거린다. 피카소가 훌륭한 이유는 그림을 잘 그렸기 때문이고, 리오넬 메시가 훌륭한 이유는 축구를 잘하기 때문이다. 장재인에 열광하는 이유는 노래를 잘부르기 때문이고, 유재석에 열광하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폰이 훌륭한 이유, 아이폰에 열광하는 이유, 그리고 세상이 스마트폰 중심으로 변화한 이유는 다름 아닌 '소프트웨어'가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갤럭시는 아이폰보다 하드웨어가 더 앞선다고 열심히 자랑이나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어쩔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애초에 삼성은 소프트웨어를 만든 적이 없다. 바다라는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기는 하나, 아직 제대로 경쟁력을 갖춘 플랫폼이라 말하기는 힘들다. 갤럭시는 내부 플랫폼으로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탑재했다. 대부분의 기사가 아이폰과 갤럭시를 비교함에 있어서 소프트웨어를 언급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삼성의 소프트웨어는 구글의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갤럭시의 소프트웨어가 아이폰보다 훌륭하다면, 그건 안드로이드가 iOS보다수한 것이지 갤럭시가 아이폰보다 우수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언론의 기사들만 보면 애플과 삼성이, 아이폰과 갤럭시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건 iOS를 앞세운 애플과 안드로이드를 앞세운 구글의 거대한 소프트웨어 플랫폼 전쟁이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기반으로 판매되고 있는 전세계의 다양한 스마트폰들 중 하나가 삼성의 갤럭시이고, LG의 옵티머스일 뿐이다.

이미 많이 늦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삼성도 LG도 정신을 차리고 부랴부랴 뭔가 대응이란 것을 하고 있다. 정부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닳았는지 이런저런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답답하게도, 정말이지 속이 터질 듯이 답답하게도, 아직까지도 언론은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안철수 교수가 '대한민국은 하드웨어 강국일지는 몰라도 소프트웨어 강국은 절대 아니다'라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그 말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덕분에, 갤럭시S가 아이폰4의 판매량을 앞질렀다고 하면, 마치 대한민국 국가대표 야구팀이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들로성된 국가대표 야구팀을 이긴 것마냥 흐뭇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나라 국민의 절대 다수다. '그렇지, 삼성이 하면 못할 리가 없지.' 라며 뿌듯해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는 동안, 그 당시 우리나라가, 우리나라 기업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사회 전체의 전반적인 기반과 역량 자체가 너무 차이났다. 하지만 지금의 이 소프트웨어 플랫폼 전쟁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도 충분히 그 경쟁의 한가운데에서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는 기회를 두고 당당히 겨룰 수 있는 기반과 역량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한심하게 놓쳐버렸는데, 언론은 이렇게 여전히 국민들을 속이고 있을 뿐이다. '역시 삼성이 잘한다니까요.' 하면서.

애플의 아이폰5가 조만간 그 베일을 벗을 것 같고, 구글 역시 안드로이드의 새버전을 속속들이 발표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노키아의 CEO가 스스로를 불타고 있는 상황이라 표현하며 모든 역량을 지금의 이 전쟁에 쏟아부을 것을 약속했다. 여전히 전쟁은 진행 중이다. 그리고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때 기사가 또하나 올라왔다.

삼성 갤럭시S II 공개 "아이폰 한물 갔어" - 아이뉴스24
"갤럭시S보다 더 크다. 그런데 더 얇고 가볍다. 성능은 물론 더 강화됐다. 전세계 천만대 이상 팔려나간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 후속작이 드디어 공개된다..."
2011/02/13 03:02 2011/02/13 03:02
Trackback URL: http://ipuris.net/textcube/trackback/501
'고래'라는 친구가 있다. 하마였는지 고래였는지 가물가물 한데 아마 고래가 맞을거다. 내가 한참 블로그질에 맛이 들려서는, 글쎄 룸메이트였던 친구에게 1년 짜리 계정에다 블로그를 설치해서 선물했던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컴퓨터와는 그다지 친분이 두텁지 않은 친구였는데 당황스러울 법도 한 선물이었다. 어찌되었든 블로그를 선물했고, 그러다보니 필명이란게 필요했는데 그 때 그 친구가 정한 이름이 '고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지낸 친구가 대학교 까지 같은 곳으로 와서 룸메이트까지 했던게 참 신기한 인연인데, 인연이란게 또 그렇듯 요즘에는 거의 연락을 못하고 지낸다. 나도 그렇고 그 친구도 자기 일에 바쁘다보니, 어쩌다 가끔 마주치면 다음에 술한잔 하자며 인사를 하면서도 정작 먼저 연락하기는 쉽지가 않았던 까닭이다. 올해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유일하게 그 친구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그 애의 싸이에서 접한게 마지막이었다.

아마 사회학과를 갔을거다. 사회학과 쪽에 관심이 많았고 그 쪽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자기가 교육학과인 줄 알았는데 한학기가 지나서 알고보니 과가 없었다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기억이 난다. 어찌되었든, 그 사회학도의 영향인지 아니면 스물하나 청춘이었기 때문인지 기숙사 방에서 우린 심심치않게 치킨에 맥주를 먹으며 이놈의 사회에 대한 열띤 토론을 했었다.



누구나 자기 글에는 그만의 색깔이 있다. 그 친구역시 그랬다. 고래는 간혹 자기 미니홈피 사진첩에다 사진 하나와 함께 생활의 고백이라는 글을 올리는데, 어릴적 얼떨결에 생겨버린 자기 블로그에 어렴풋이 비치던 그 색이 이제는 제법 선명하게 드러나는 느낌이다. 그리고 확실히 시간이 흘렀다. 예전에도 잘 썼던 글이지만, 지금은 더 잘 쓴다. 글을 더 자주쓸 걸 그랬다는, 그랬으면 더 정갈한 글을 쓸 수 있었을 거라는 글에 내가 부끄러워 진다. 역시 대학을 졸업하면 그 전공의 포스란게 생기는건가, 싶기도 하다.



좋았다. 역시나 뜬근없는 결론이다. 그 친구의 글에서 느껴졌던 것들 덕분에, 참 좋았다. 함께했던 스물하나 그 때처럼, 즐겁게, 진심으로 고민하면서 살아왔구나- 하는게 느껴져서다.

군대를 간다고 한다. 언제, 어떻게 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공학 전공이 아니라서, 대학원을 진학한다고 하더라도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거다. 그걸 모르고 대학원을 선택하지도 않았을거고. 그 전에, 꼭 한번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해야겠다.




2010/07/01 00:37 2010/07/01 00:37
Trackback URL: http://ipuris.net/textcube/trackback/473
아직 잘 모르겠는게 하나 있어.
사람이란게 원래 그렇잖아.
한참이나 친하다가도 한동안 연락이 뜸해지기도 하는거잖아.
때로는 전혀 친하지 않던 누군가와 갑자기 가까워지기도 하고 말야.



그런데,
나중에 결혼을 하고 나서도 계속 가까운 사이로 지낼 수 있을까?
지금, 친한 여자애들이랑 마랴.
그래도 되는걸까?



난 참 눈이 높은 편인데, 그래서 심각하게 난 결혼을 못할 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가끔 들곤 하는데마랴.
그래서 내 배우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내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런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까운 친구가 있을거고, 그 친구란게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내가 그렇다고 해서 남들도 그럴지는 모를 일이고, 또 정작 내 스스로 조차도 머리가 아닌 마음까지 정말 내 배우자의 가까운 이성친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르겠거든.
당장 지금도 친하던 여자애들이 남자친구가 생기면 연락하기 전에 한 번 더 주저하게 되니까.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거야.
주위에서 결혼하고 나면 여자애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건 참 힘들게 된다, 이런 말을 듣게되다 보니까 마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지금은 내 곁에 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는 건 아닐까.
지금은 편하게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밥도 같이먹고, 무슨 일 있으면 술이라도 한 잔 할 수 있는데,
이 친구들 나중에 5년 뒤, 10년 뒤에도 지금처럼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마랴.
진짜 그렇게,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는 단지 '젊었던 그 때, 좋았던 친구' 정도로 추억되는건 아닐지.
그렇다면 좀 슬프잖아.



사실 남자는 크게 걱정 안해.
한동안 못보더라도 이미 충분히 친한 이 녀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만나서 웃고 떠들 수 있을거라 믿으니까.
뭐라 말로 표현은 못하겠지만, 몰라 그런게 식상한 말로 우정이니 그런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믿음이 우리에겐 있다고 믿거든.
근데 여자도 그럴 수 있을까,



9회말 2아웃 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어.
수애가 나와서 참 좋아했던 드라마인데, 거기 이런 장면이 나와.
수애 친구 누군가의 이야기인데, 아, 물론 여자야.
고등학교 때부터 있었던 집안의 빚을, 30살이 되어서야 겨우 다 갚게 되거든.
그리고 그 빚을 다 갚던 날, 제일 친한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고 나와서는, 친구한테, 남자인데, 이렇게 이야기해.
"나 한번만 안아줄래? 그동안 수고했다고. 장하다고."



이게 여자가 남자한테 저런 말 한거니까 괜찮았는지는 모르겠는데,
가끔 나도 누군가한테 기대고 싶을 때가 있거든.
누가 날 좀 안아줬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단마랴.



이야기하다 보면 편해지고, 같이 걱정해주는게 고맙고, 남자여자를 떠나서 그렇게 가까운 친구가 있는게 참 좋은, 그런 여자애들이 있는데..
그냥 이렇게 지내다가,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더 먹으면 자연스레 멀어지는걸까,
그런 생각이 들다 보니 뭔가 서글퍼진거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 행복한 세상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





2010/04/19 04:33 2010/04/19 04:33
Trackback URL: http://ipuris.net/textcube/trackback/471
'괴롭다'

늦은 밤, 친구와 문자질을 하다가, 별 대수롭지 않은 말 끝에 친구가 붙인 말이었다. 그냥 외로워서 하는 말이었다. 기댈 사람도 없고, 내가 하고싶던 일이 이 일이 맞는지도 의문스럽고, 내가 너무 부족해 보이고, 여유도 없고, 시간은 자꾸 흘러만가고... 그래서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었다. 괴롭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누가 안그럴까. 어쩌면 원래 산다는 것 자체가 괴로운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 친구 역시 애시당초 무슨 위로를 듣고자 한 말도 아닐 터였다. 오히려 그런 말을 내게 하는 친구가 고마웠다. 모두가 외로워하지만, 그걸 고백하는 건 쉽지않은 일이다.


2010/03/30 02:37 2010/03/30 02:37
Trackback URL: http://ipuris.net/textcube/trackback/470
버려졌다. 그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었다.

점점 글을 쓰는 빈도가 뜸해지더니 이제는 아예 잊혀져 버렸다.
미안함이나 아쉬움과 같은 감정이 주위에 맴돌았으나 거기까지였다.
나는 더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글을 쓸수록 느껴지는 자괴는 나를 더욱 침전시켰고,
남을 의식해 공개한 글은 매번, 마치 발가벗겨진 것처럼 부끄러웠다.




2010/03/21 03:21 2010/03/21 03:21
Trackback URL: http://ipuris.net/textcube/trackback/469
어릴 적 즐겁게 보았던 만화가 여럿 있다. 엄마도 좋아했던 슬램덩크, 기가 슬레이브를 언제 쓸지 두근두근 했던 마법소녀 리나, 어린 나에겐 너무 어려웠지만 멋모르고 재밌게 봤던 나디아...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영혼기병 라젠카다. 신해철이 부른 고딕락 풍의 테마곡 'Lazenca Save Us', 그리고 '해에게서 소년에게'로도 유명했고, 그 당시로써는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초대형 스케일의 국산 애니메이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물가물하지만 부분적으로 3D 기법이 들어간 애니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라젠카를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주인공이 하찮았던(!) 최초의 만화였기 때문이다.

물론 스토리의 진행상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이었던 남자애찾아보니 이름이 '아틴'이란다는 봉인되어 있던 가이런, 즉 라젠카와 반응하는 선택받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다지 정의로운 녀석도 아니었고, 지구를 구하고픈 마음도 그다지 크지 않았으며, 자신의 그런 능력을 귀찮아했다. 어디하나 특별히 잘난 것도 아니었고, 자신만이 가졌던 라젠카를 조종할 수 있는 그 능력조차도 처음에는 완벽한 것이 아니어서 그 멋있는 라젠카가 뒤뚱뒤뚱 걷다가 넘어지기도 하는, 그야말로 당황스러운 주인공이었다.

그게 충격이었다. 주인공이 이렇게 멍청할 수 있다니! 그때까지의 만화 주인공이란 불꽃슛을 쏘는 통키라던가, 독수리슛의 슛돌이라던가, 최강의 지구용사 다간은 말할 것도 없었고, 밤만 되면 삐리링 변신하는 세일러문까지... 뭐 전부 멋있고 이쁘고 착하고, 싸우기만 하면 다 이기는 그런 녀석들이었는데 이 만화의 주인공이란 녀석은 그렇게 바보같았던거다.

그래서 그렇게도 좋았다. 왠지모르게 현실적이었달까. 그 이후로 감동적으로 보게 된 만화도 살짝 바뀌었는데, 주인공에게서 무언가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것들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슬램덩크의 강백호라던가 바람의 검심의 켄신같은 녀석들은, 물론 비상식적으로 강한 모습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여실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제 주인공과 싸우는 상대 역시 단순히 무찔러야할 나쁜놈이 아니라, 그 역시 주인공과 똑같은 한 명의 인간일 뿐이었다. 같은 목표를 위해 노력해온, 혹은 서로 다른 정의를 믿었던 또 한명의 주인공이었다.

아쉽게도 라젠카의 엔딩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뭐 찾아보면 알 수야 있을 것이고 원하면 어디선가 받아서 다시 처음부터 볼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 이거 하나면 족하다. 사춘기의 한 복판에 서있던 나에게, 그러니까 이 영혼기병 라젠카라는 작품은 제법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는거. 추억은 때론 추억으로 남겨두는게 더 아름다운 법이니까.




2010/02/25 13:26 2010/02/25 13:26
Trackback URL: http://ipuris.net/textcube/trackback/468
그 작가만의 세계관이 존재해야, 그래야 '소설'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의 세계관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방향 말이다. 작가가 일부러 자신의 세계관을 투영시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작품에 열정이 있다면 결코 지나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중이 적고 중요치 않은 등장인물이라 할 지라도, 그에게도 역시 자신만의 경험과 가치관, 꿈과 인생은 존재한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 이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스토리의 전개 상 필요에 의해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그 사람조차도 소홀해질 수가 없다.

2010/02/16 22:21 2010/02/16 22:21
Trackback URL: http://ipuris.net/textcube/trackback/466

세상엔 참 많은 일이 일어난다.

한국은 32년 만에 중국에게 축구를 졌다.
서울에도 진도 3.0의 지진이 발생했다.
올림픽에서 훈련을 하던 선수는 대회 개막을 하루 앞두고 죽었다.

작년 설날 즈음, 재개발 보상을 놓고 시위하던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고, 들은 척도 안하던 정부는 선거철이 돌아오니 갑자기 대부분의 조건을 수용하며 합의를 했다. 그들은 판자촌에 살던 정권 전복의 임무를띤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그들로 부터 선동된 사람들이란다. 버스타고 10분만 가면 나오는 동네였다. 어째뜬 불에 타 죽었다. 오 필승 코리아라는 애국심이 물씬 묻어나는 곡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많은 락그룹이 된 어떤 밴드는 채 10년도 되지 않아 정부로부터 보수진영으로부터 반체제인사 쯤으로 간주된다. 물론 전재산이 29만원이라던 사람은 여전히 우리 학교 뒤 으리으리한 집에 산다.

여성인권단체에서는 보수측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진실규명하라고 난리고, 진보측에서 발생하면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운운하며 알아서 할테니 더이상의 관심은 끄라고 강요한다. 그렇게도 인권에 목숨걸면서도 여전히 북한 동포들의 인권이나 외국인 근로자 등에 대한 인권에는 별 관심이 없고, 쌀이니 밀가루니 가져다 주긴 하지만 그게 잘 배분되는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국회의장실에서 이단 옆차기를 하며 난동을 부린 국회의원에게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어지러운 세상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과 그들이 옳다고 믿는 것은 결코 일치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옳다고 믿는대로 행동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가끔 놀랄 정도로 정의롭고, 대부분 지극히 이기적이다.

이런 세상에서 기준을 찾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결코 독립적일 수 없으며, 상황에 의해 강요된 결정을 내가 내린 것이라 합리화 하는데 우리는 너무나 익숙하다.

세상에 단 하나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수학적 기준이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참이며, 결코 1+1은 3이 될 수 없다. 내가 하고있는 일에 대한 가치판단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것이 바로 수학이고 과학이리라. 그런 이유로 나는 부끄럽다. 나는 도망치듯, 이 사회와 부딪히지 않을 만 한 것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큰 힘을 가질수록, 그 힘은 결국 누군가에 의해 이용당하기 마련이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를 만든 튜링은 한창 젊은 나이에 청산가리를 주사한 사과를 베어먹고 자살했다. 그는 2차대전에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야했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죽을 때까지 강제로 약물을 투여당했다.

나에게 있어 정의란 무엇인가. 왜군이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임금이 자신을 죽이려 하던 그 상황에서, 열세척의 배로 삼백삼십세척의 왜선을 맞이했던 그 고독했을 이순신이 믿었던 정의는 무엇이었을까.



2010/02/13 22:17 2010/02/13 22:17
Trackback URL: http://ipuris.net/textcube/trackback/467
일요일 오전, 여전히 신촌은 그늘져있다.
춥지도 않은 날씨. 하지만 사람들은 어디론가 발길을 재촉한다.
신촌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은 저기, 오토바이 탄 자장면 배달 아저씨가 아닐까.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들. 이기적인 배려.
자라지 않은 어른으로 가득찬 세상은 숨이 막혔다.
남보다 뒤쳐질까 두려워하고, 남을 무시하며 만족을 느끼는, 그것은 분명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스무살, 내 눈에 비친 서울은 그늘져있었다.

열정 없는 노력은 슬프다.
우리, 조금만 천천히 걸으면 안될까?



세상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보다, 슬프다.


2010/01/31 13:16 2010/01/31 13:16
Trackback URL: http://ipuris.net/textcube/trackback/465
난 그다지 청소를 잘하는 편이 못된다. 그래도 연구실에 있는 내 책상은 좀 깔끔하게 해놓는 편이긴 한데, 그 역시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저 복잡해 보인단 사실에 종종 놀라기도 한다. 이게 복잡한거면, 도대체 내 방은 뭐란 말이지! 어째뜬 요즘 내 책상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이런 깔끔한 내 책상 위에 포장도 뜯지 않고 몇 개월 째 버려져있는 물건이 있으니, 그것은 다이어리다.

다이어리가 몇 개월 째 버려져있다니, 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내 말을 들어보기 바란다. 버려져있는 그 다이어리는 작년 것이다. 그러니까 작년 말, 새해를 준비한답시고 다이어리를 샀는데 그와 함께 작년의 다이어리가 사은품으로 함께 배달된 것이다. 하나는 이제 막 시작한 올해 다이어리, 하나는 이미 지나버린 작년 다이어리. 그래도 포장도 뜯지 않은 새걸 버리기도 아깝고, 막상 쓰자니 쓸 데도 없고 하다보니 몇 개월째 책상위에 방치되어 있다.



때가 지나면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플룻을 배워 보려한다. 더 늦으면 정말 할 수 없게 될 것 같아서.




2010/01/29 15:20 2010/01/29 15:20
Trackback URL: http://ipuris.net/textcube/trackback/462
착각이다.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까지 훌륭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성공하기까지의 열정과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나,
그 열정이나 노력이라는 단어 안에 포함된 긍정적인 뉘앙스만으로,
그의 인격마저 긍정적인 것으로 포장시켜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안타깝게도 이 시대의 성공이란 그 사람의 인격과는 관련 없이 정의되고,
도덕과 정의는 목적은 커녕 도구로써의 가치마저도 잃어버린 까닭이다.







2010/01/28 03:42 2010/01/28 03:42
Trackback URL: http://ipuris.net/textcube/trackback/463
부산에는 두 번의 큰 눈이 내렸다. 1986년, 그리고 2005년의 폭설이 바로 그것이다.

부산은 한반도 가장 남쪽에, 그것도 바다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우산을 꼭 쥐고 있으면 하늘을 날 수 있고, 앞으로 한걸음 내딛기도 힘든 그런 태풍은 한 해에도 꼭 한두번씩은 지나가지만, 하지만 눈만큼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어쩌다 한번 쯤 내리는 눈도 땅에 닿기가 무섭게 녹아버리기 일수이니, 부산에 사는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눈사람'이라든지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같은 것은 그야말로 로망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어릴 적, 내 작은 발조차 덮지 못하는 눈을 보고도 그저 행복에 겨워,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겠다고 온 종일 우리집 작은 마당을 이리저리 손으로 쓸고 다녔던 기억 같은 것은, 비단 나 뿐만 아니라 부산에서 태어나 자라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것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부산에는 두 번의 큰 눈이 내렸다. 1986년, 그리고 2005년의 폭설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난 1986년 4월에 태어났고, 2005년에 서울로 올라와버렸다. 그러니까 난, 그 두 번의 폭설을 모두 보지 못한 것이다.



서울에 폭설이 내렸다. 온 세상이 난리가 난듯하다. 하지만 역시, 부산에는 그저 비가 쏟아졌을 뿐이란다.

기다리나 보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해운대 겨울 밤바다에서, 20년만에 한 번 내린다는 그 하얀 눈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늘이 나 하나를 기다려 주고있나보다.

2010/01/05 03:18 2010/01/05 03:18
Trackback URL: http://ipuris.net/textcube/trackback/460
한 해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인지, 괜시리 감상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에 빙빙 돌아다닌다.
고개를 들어보니, 마침 시집이 보인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時'

마치 날 위해 신이 놓아둔 듯 하여, 꺼내어 첫 장부터 하나씩 넘겨본다.
목차를 보니 내가 좋아하는 '花園에 꽃이 핀다' 라는 산문도 실려있다.

그리고 그 다음 장,

序時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나는 온 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2009/12/31 10:26 2009/12/31 10:26
Trackback URL: http://ipuris.net/textcube/trackback/459
내가 경영학을 사회과학, 즉 '과학'이라고 인정하기 싫어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진 느슨함 때문이다. 물론 연역적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서, 절대로 틀릴 수가 없는 수학의 완벽함과 논리정연함을 사회과학에서 바랄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 그것이 '과학'으로 불리려면 자연과학이 갖추고 있는 정도의 귀납적 틀을 갖추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내가 지금 손에 쥐고있는 펜을 놓으면 이 펜이 바닥에 어디부터 어떻게 떨어질 지, 우리집 가스레인지 위에 라면 물을 올리면 정확히 몇 초 뒤에 끓을 지 자연과학은 추측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사회과학은, 특히 경영학은 그렇지않다. '대부분 그런데, 언제나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정도면, 그래 인간사회를 분석하고 예측한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지, 이 정도면 훌륭하다 하겠는데, 내가 느끼는 바를 그대로 말하자면 '이렇게 될 수도 있긴 하다. 근데 안될 수도 있다' 수준에 불과하다.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옳음'에 대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만유인력의 법칙은, '옳다'. 어떠한 접근법으로 증명을 하더라도, 어떠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항상 같은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다르게 말하면 '진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에 반해 경영학에 있어서 '옳음'이란 존재하는가? 예를 생각해보면 그 기준의 부재는 너무나도 확연히 드러난다.

기업의 이미지 마케팅이 중요하고, 고객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것에서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주는 것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했다고 요즘의 마케팅은 역설한다. 번지르하게 말은 좋은데, 이는 과연 옳은 것인가. 농심이나 삼양은 정말 고객에게 가치를 주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상품을 파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가치를 주는게 아니라 그냥 라면을 파는 것 같은데 말이다. 식품회사가 좀 그렇다면, 그들이 좋아하는 IT의 대표주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떤 가치를 팔고 있는건가? 구글은 어떤 가치를 팔고 있는가? 선뜻 대답할 수 있는가? 난 오히려 단순히 고객의 니즈needs에 대응하는 '상품'을 팔고 있을 뿐인 그들에게 '가치'를 갖다붙이는 것이 너무나도 억지스러워 보인다.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애플의 아이폰의 경우는 다행히도 그 '가치'라는 말을 적용하기 수월하다. 아이폰이 성공한 이유는 혁신적인 UI와 그 안에 담긴 효과적인 수익모델, 그놈의 '가치'로 다시 말한다면, 고객은 단순한 핸드폰이 아닌 그 안에서 '즐거움'이라는 가치를 원했고, 아이폰은 그 가치를 충족시켜 주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적용하기 좋은 케이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케이스도 있고... 그렇다면 혹시,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주는 패러다임'이란 건, 사실 대단한 의미를 지닌 무언가라기보다는 뭐 그냥 그런 케이스도 있긴 하더라, 정도인 건 아닐까?

컨버전스가 중요하다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단 하나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 내는 것 역시 사람들은 원한다. 사람들이 동영상도 볼수 있고 DMB도 되고 사전도 되는 동시에 라디오도 들을 수 있는 MP3 플레이어를 사는 이유, 혹은 사진도 찍을 수 있고 계산기도 되며 엑셀 파일을 열어보고 스톱워치도 되며 간이 프로젝터도 되는 핸드폰을 사는 이유가 과연 그 모든 기능을 다 바래서이고, 컨버전스의 시대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단지 대부분의 MP3 플레이어 제조사들이, 핸드폰 제조사들이 더 높은 마진율을 위해 단지 기본 기능만을 가진 제품은 출시하지 않는 이유인가. 

모든 서비스가 개인화되어야 한다고 소리친다. 더이상 서비스 제공자가 제공하는 똑같은 모습의 서비스를 모든 사람이 사용하는 시대는 끝났단다. 하지만 개인화를 시도했던 싸이월드 홈2는, 그야말로 '망했다'.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변해간단다.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개념이 합쳐진 프로슈머Prosumer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이마저도 과거의 이야기란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단다. 물론 세상은 빨리 변한다. 하지만 이렇게도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새로운 '이론'이나 '패러다임'이 나타나는 이유는, 혹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그 이론이나 패러다임 자체가 허술했던 탓은 아닌가? 그냥 눈앞에 보이는대로 이런말 저런말 갖다붙여 놨으니, 6개월만 지나도 1년만 지나도 그 말이 틀린 말이 되는건 아닌가?

결국 내가 느끼는 경영학이란, '돈 좀 더 벌기 위한 잔재주'일 뿐이지, '진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런 것에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게 영 마음에 들지가 않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이란건 있을 수 밖에 없는거고, 자연스레 어떻게 하면 그 기업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연구와 노력의 끝에 발생한, 그 중요성은 인정할 수 밖에 없으나 아직 논리적인 학문의 틀이 제대로 갖추어졌는지 의심스러운 학문, 그게 나에게 있어서 경영학의 학문적 위치다.

아니면, 나의 이런 거부감은 경영학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단, 경영학을 전공한다는 사람들이 마치 진리인듯이 떠벌리고 다니는 의미없는 말장난에 대한 실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2009/12/16 10:33 2009/12/16 10:33
Trackback URL: http://ipuris.net/textcube/trackback/457
« Previous : 1 : 2 : 3 : 4 : 5 : ... 7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