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철학 입문 수업을 청강해 본 적이 있었다.
공대생인 나에게는, 정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준 수업이었다.
'왜 그래야하죠?'
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대학교의 교수라면, 최소한 대학교 1학년 학생보다는 훨씬 많은 공부를 하고 깊이를 가진 학문적 소양을 가진 사람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수업은 교수님이 하는 수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왜 그래야하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데카르트는 이런이런 모순을 가지고 있는것 아닙니까, 좀 전에 교수님이 하실 말씀은 모순 아닌가요, 스스로 되돌이켜 보면 논의의 초점은 그것이 아니라 이런 것이어야 할 것 같은데, 아닌가요.
이런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한두번도 아니고, 한시간 수업 중 30분은 그런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데 사용된 느낌이다. 질문하고 답변하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수업과 관련없는 사람이 들어와서 본다면
'교수랑 학생들이랑 지금 싸우고 있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로 진지하게 토론한다.
'도대체 진도는 언제 나가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공대는 전혀, 그런 수업분위기가 아니다.
우리학교, 우리과만의 특징일지도 모르나, 공대라면 모두 이런 분위기일 것이라 생각된다.
공대는 앞에서 교수님이 원리를 설명하고, 예제 문제를 풀고, 다음 원리를 설명하고, 예제 문제를 푼다.
질문은 문제가 이해되지 않는다던지, 원리를 다시 설명해 달라든지 하는 정도다. 단 한번의 질문도 없이 수업이 끝나는 경우 역시 매우 흔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철학같은 수업과는 달리, 수학과 과학을 배우는 공대의 수업에서는 위와 같은 질문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수학과 그 수학을 기초로 발전한 과학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약속들로 출발해서, 100% 확실한 수학적 증명들로 그 기초부터 쌓여온 학문이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라는 말은, 학생의 입장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옳다는 것이 증명된 명제를 저런 식으로 질문한다는 것은 '내가 틀렸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그렇게 설명하셨지만, 전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보고 싶습니다."
이런 말 역시 의미가 없다. 그 방향이 어떻든, 수학적 진리는 어디서 어떻게 접근하더라도 항상 하나의 결과만을 가져올 뿐이다.
자신이 이해되지 않아서, 혹은 몰라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면, 교수님의 말에 반론을 펼치며 자기 생각을 펴는 류의 질문은 아예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실 분위기가 군대와도 같은 상하수직적 관계라던 언론의 이야기도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수년동안 질문 자체가 필요가 없는 공부를 해오던 사람들이다. 교수가 하는 말은 항상 옳은 것이고, 항상 진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수직적인 분위기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학문을 하는 사람들인데, 수직적일 수 밖에 없는 학문을 하다 보니, 그들의 문화에도 역시 그런 수직적 문화가 쉽게 생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결론은 이거다.
'질문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공대에서는 그것이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꿈을 펼칠 곳은 공대가 아닌 사회다.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곳일테고, 그 때문에 수많은 의견충돌이 생기는 곳임이 분명하다.
공대생에게 인문학적 소양이 필수시되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이미 상당히 중요한 부분으로 인정받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란 '좋게좋게' 맞춰나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자신의 주장을 충분히 표현하고 설득할 수 있고, 적절한 토론을 통해 가장 나은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일테니까.
질문,
지금의 공대생들에게 맥스웰 방정식을 푸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아닐까?
2006/06/01 16:53
2006/06/01 1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