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책을 읽으며, 뉴요커가 된 듯한 기분에 빠져본다.
점심은 1500원짜리 라면을 사 먹었다. 배가 고플까봐 밥까지 말아먹었다.
어쩌면 여기 오려고 라면으로 점심을 때웠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 때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마치 모든게 정해져 있었던 것 처럼.
참고로 난 남자다.
그래, 바로 그거다. '된장남'
풋, 웃기다.

스타벅스 로고를 살짝 비춰야만 하겠지.
스타벅스 앞을 지나가면서, 차마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쓰고싶어 졌기 때문이다. 지금 빨리 스타벅스 안에 들어가서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글을 쓰지 않으면 큰일날 것만 같았다.
주제도 없고 재미도 없는 글, 오늘처럼 비오는 날에는 이런 글이 은근히 매력적일지도 모른다. 유럽여행을 갔을 때 영국에서 보았던 스타벅스는 정말 '허름한 커피집'이었다.
그것도 테이크 아웃 커피를 파는 곳. 머리가 백발이 되신 할머니 두 분
서양 사람을 상상해야 한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는 우리나라 할머니를 상상하기는 아마 좀 힘들겠지. 정도가 그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딱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나라처럼 스타벅스가 럭셔리한 곳도 없다지. 커피값은 그렇게 비싼데도 지금 이렇게 비오는 날의 신촌 스타벅스에는 사람이 참 많다.
밥값이 우리나라의 두배 정도는 하는 런던이지만 스타벅스 커피값은 비슷했으니 단순히 '외국과 실제로 몇 백원 밖에는 차이가 안난다.' 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듯 하다. 프렌차이즈 기업이라 그렇다고? 거기는 빅맥 세트도 6000원이 훨씬 넘었거든. 어디 한번 둘러보자, 남자 혼자 온 테이블은.. 오호, 나까지 셋이다. 나 혼자일 줄 알았는데 제법 많네?
셀카질까지 해야하는건가?누군가는 된장녀를 옹호하고, 누군가는 된장녀를 비난하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스타벅스는 된장녀 논란(?)을 거치면서 '허영심' 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안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래, 씨밀레에서 내가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다원주의 사회이다. 무언가를 판단함에 있어서 그 근간이 되는 기준들은 너무 다양하다. 개개인의 생각이 다르다. 동시에, 그 하나하나의 생각이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이기도 하다.'
스타벅스에 대해서, 여대생들의 뉴요커 환상에 대해서, 된장녀에 대해서, 무엇이 옳다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결론지을 수 없게 되어버린 세상이다.
바람직한 세상일진 몰라도,
사실 그것도 모르겠지만 재미없는 세상이다.
비오는 신촌을 거니는 사람들을 한번 찍어보려 카메라를 들었더니, HOLLYS COFFEE 라는 또다른 커피 전문점이 보인다.
스타벅스에서 할리스를 찍는다니,
전혀 이상할 것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러니하다.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커피 전문점인 덕분에, 추억이 몇 가지 담겨있다.
대학을 처음 왔을 때, 입학하기 전에 Placement Test 라는 수학시험을 쳐야만 했었다.
미적분을 배우지 않고도 공대를 들어올 수 있는 7차 교육과정의 허점을 우려한 대학의 궁여지책이었지만,
사실 천명의 공대생 중 미적분 안한 사람이 10명은 되었을까? 어째든 치루어야만 하는 시험이었고, 예비대학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미리 친해졌던 수시 친구들과 함께 바로 저 곳, 할리스에서 수학의 정석을 펴놓고 공부를 했었다.
'공부 하는 척을 했다' 라고 표현하는게 낫겠다.아직 그 때 친구들을 가끔 만난다.
마지막으로 생일 파티를 해 본적이 언젠지 가물가물하다.
생일 축하야 받았지만, '파티'말이다.방에 불을 끄고 케이크 위에 꽃핀 촛불 앞에서 만족한 듯 환하게 웃으며 찍은 어릴적 사진, 그게 아마 유치원 때 쯤일꺼다.
그런데 올해 생일에는 파티를 했었다.
한 사람이, 저기 내 눈 앞에 보이는 저 할리스에서
2층이었나 3층이었나 작은 케이크 한 조각에 예쁜 초를 꼽아놓고는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타오르던 촛불이 얼마나 따스하던지...
조금, 아프다.

저기였다.
어떤 남자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우산을 쓰고 간다.
어떤 아저씨는 우산을 빙빙 돌리면서 간다.
어릴 때 난 우산을 돌리는 걸 참 좋아했었다.
우산의 알록달록한 색깔과 무늬가 만들어내는 황홀한 화음에 취해, 걷다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우산을 빙빙 돌리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말하셨다. 우산을 돌리면 빗물이 다른 사람한테 튄다고.
'어떡하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나는, 결국 우산 돌리기를 꾹 참으며 걷다가 주위에 사람이 없다 싶으면 엄마에게 빗물이 닿지 않도록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우산을 빙빙 돌렸다.
비오는 하늘의 황홀한 색에 취해, 나는 환하게 웃었다.
나는 요즘 우산을 돌리지 않는다.
누가 나에게 알록달록한 예쁜 우산을 선물해줬으면 좋겠다.
오늘 오랜만에 혼자 돌아다녀 봤다.
오랜만에 '혼자' 돌아다녀 본건지, 오랜만에 혼자 '돌아다녀' 본건지...
이런건 원래 언급하지 않고 글 읽는 이에 따라 알아서 이해하도록 두는게 편하지만, 지금은 그냥 마음 가는데로 글을 쓰고싶다. 이런 것도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소리만 골라 한다.기분이 이상하다.
하얀 도화지가 된 것 같다.
어릴적, 미술시간에 쓰려던 도화지가 비에 젖어버려서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 도화지가 된 것 같다.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색 도화지.
그 위로 비가 내린다.
난 축축히 젖는다.
그리 길지 않았던 여유.
이제 하나씩 결정해야할 때다.
장마가 시작된단다.
비가 계속 내린다.
비가 아직도 계속 내린다.

end.